배터리 3사 전고체 로드맵 공개
지름 46㎜ 원통형 배터리 출시 예정
LFP 배터리도 출격 준비
그동안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던 전고체 배터리가 현실화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리튬메탈, 리튬황 등 차세대 배터리들도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테슬라가 불을 지핀 지름 46㎜ 원통형 배터리는 거의 모든 배터리셀 기업과 상당수 부품·소재 기업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2024/EV트렌드코리아2024에서 나타난 올해 트렌드다.
우선 속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점점 구체화하고 있다. 고주영 삼성 SDI는 부사장(중대형상품기획팀장)은 7일 부대 행사인 더배터리콘퍼런스2024 기조연설에서 전고체 배터리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고 부사장은 "지난해 말 첫 번째 프로토타입의 샘플을 3곳의 OEM(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해 현재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올해 A샘플 공급을 시작해 2027년에는 양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고체, 더이상 꿈이 아니다
통상 배터리 셀 기업이 샘플을 제작하면 A샘플→B샘플→C샘플을 차례로 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하며 성능과 안정성을 테스트하게 된다. 소요 기간은 3~4년이다. 삼성SDI는 샘플 제작을 위해 지난해 파일럿 공장을 준공한 바 있다. 샘플 테스트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양산 준비에 들어간다.
삼성SDI가 제조사에 보낸 샘플은 20암페어시(Ah) 용량의 소형 셀이다. 자동차에 탑재하기 위해서는 90Ah 크기로 용량을 키워야 한다. 양산라인도 여기에 맞춰 준공하게 된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소재와 장비 등 탄탄한 공급망도 갖춰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삼성SDI는 음극을 없앤 애노드 프리(Anode Fee) 고체 전해질을 준비하고 있다. 무음 극이라고 해서 음극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음극활물질을 없애 부피를 줄였다는 뜻이다. 대신 양극으로부터 이동한 리튬이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실버 카본층을 음극에 적용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이를 통해 삼성SDI는 450Wh/kg의 에너지밀도를 구현했다고 밝혔다.
고주영 부사장은 전고체 배터리의 양극에는 하이니켈뿐 아니라 리튬인산철(LFP)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도 전고체배터리의 출시계획을 밝혔으나 시기는 삼성SDI보다 늦은 2030년이다.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전무(최고기술책임자·CTO)는 더배터리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전고체에 관해서는 경쟁사보다 양산 시점이 늦을 수 있는데 제대로 된 연구개발(R&D)을 하고자 하는 니즈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도 기자들과 만나 전고체 배터리에 대해선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된 것을 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음극에 리튬메탈, 무음극, 퓨어실리콘 등 다양한 소재를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K온은 미국의 벤처기업인 솔리드파워와 협력해서 개발한 황화물계 고체 배터리를 전시했다. SK온은 2025년까지 고체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60Ah 이상 용량의 전기차용 셀을 최대 3만개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2029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너도나도 46파이 원통형…건식 전극이 과제
배터리 3사 모두 지름이 46㎜인 원통형 배터리 출시 계획을 밝혔다.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전무는 "조만간 양산하게 될 4680 배터리(지름이 46㎜ 높이 80㎜) 배터리는 굉장히 장점이 많다"며 "가격 경쟁력이 있으며 하이엔드 셀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8월에 4680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테슬라에 이 배터리를 공급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특히 4680 배터리에 건식 전극 공정을 적용할 계획이다. 현재 양극과 음극은 활물질, 도전재, 바인더를 용매에 섞어 슬러리를 만든 후 집전체에 도포하고 건조하는 습식 공정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중 용매에 섞어 슬러리를 만드는 과정을 생략한 것이 건식 전극이다. 가루 형태의 활물질 혼합물을 바로 집전체에 코팅하거나 필름으로 만든 후 집전체에 붙이는 방식이 있다.
건식 전극을 적용하면 건조 과정에 필요한 전기를 아낄 수 있고 공간도 효율화할 수 있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슬러리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유기용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건식 전극을 이용하면 활물질을 두껍게 쌓을 수 있어 에너지밀도를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제조 공정이 까다로워 테슬라도 현재 음극에만 건식 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양극 건식 전극에 대해서도 거의 개발을 마친 것으로 파악된다. 김제영 전무는 기조연설에서 전극 공정에 대해 "파일럿 개발이 거의 끝났으며 준 양산급"이라고 밝혔다.
테슬라가 4680배터리 출시 계획을 밝힌 후 북미와 유럽의 자동차 제조사들도 46㎜ 원통형 배터리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GM, BMW, 볼보, 스텔란티스 등이 출시계획을 밝혔거나 검토중이다.
다만 높이는 자동차 메이커마다 다른 규격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전시회에 2가지 규격의 46㎜ 원통형 배터리를 전시했다. 회사 관계자는 "2가지 외에도 다양한 크기의 46㎜ 원통형 배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4680, 4695, 46110, 46120 등 4개의 라인업을 갖추고 GM, BMW 등 고객사와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 는 올해 말까지 46㎜ 원통형 배터리 양산 준비를 마칠 계획이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도 인터배터리2024에서 기자들과 만나 "46파이(지름 46㎜) 배터리는 내년 초면 충분히 양산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시기는 고객에 따라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SK온도 현재 46㎜ 원통형 배터리를 준비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사양이나 기술 수준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행사에서는 금양도 4695 원통형 배터리를 선보여 관심을 받았다. 금양 관계자는 "4695 배터리에는 습식 공정을 적용했으며 광물 채취부터 소재, 양극재까지 밸류체인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경쟁사 대비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46㎜ 원통형 배터리 관련 기업들도 눈길을 끌었다. 삼성SDI에 스태킹 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필에너지는 46㎜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권취기(둥근 형태로 돌돌 마는 장비)를 개발해 전시 기간에 주목을 받았다. 동원시스템즈는 46㎜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알루미늄 캔을 전시했다.
LFP 출격 나선 K-배터리, 가격은요?
이번 전시회 및 콘퍼런스에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전기차 기업들이 치열한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LFP 배터리 채택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완성차 제조사들이 수익성을 높이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적정 가격대의 전기차를 선보이기 위해 LFP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다"며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2세대 전기차 플랫폼이 출시되는 2025~2026년을 기점으로 LFP 배터리 채택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시 부스에서 LFP를 이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소개했다. 우선 LFP 배터리로 ESS 시장을 공략한 뒤 차량용으로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전시 부스 중앙에는 파우치형 셀투팩(CTP·Cell To Pack)이 자리했다. 셀투팩은 모듈 없이 바로 셀을 자동차에 탑재하는 설계 방식이다. 원래 중국 배터리 기업인 CATL이 각형 LFP 배터리의 단점인 낮은 에너지밀도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했다. BYD도 LFP 배터리를 각형 CTP 방식으로 자동차에 적용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 LFP 배터리를 CTP 방식으로 제공할 경우 각형 CTP 보다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 파우치셀이 각형 셀에 비해 높은 에너지밀도를 나타낸다.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 CTP에 열전이 지연 소재를 적용해 발화 위험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SK온은 전시회에서 저온 성능과 에너지밀도를 개선한 '윈터프로 LFP' 배터리를 공개했다. 일반적으로 LFP 배터리는 저온(-20도)에서 주행 거리가 50~70%로 급감한다. SK온은 에너지밀도를 19% 높이고도 저온에서 충전 용량과 방전 용량으 기존 LFP 대비 16%, 10%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LFP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던 삼성SDI도 LFP에 적극 뛰어드는 모양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2026년 LFP 배터리를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전시 부스에 LFP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각형 CTP를 탑재한 목업 자동차를 전시 부스 전면에 내세웠는데 LFP 배터리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고주영 부사장도 기조연설에서 "중국 업체들보다 LFP 개발이 늦었지만 기술적으로는 준비가 다 됐고 양산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며 "양산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LFP 배터리 확대가 예상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에코프로, 엘앤에프, LS 등 양극재 기업들도 LFP용 양극재를 부스에 전시했다. 다만 국산 LFP의 탑재 여부는 중국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이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일하이텍은 LFP 재활용을 위한 파일럿 공장을 설립하고 2026년에 대규모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FP 재활용의 경우 리튬만을 추출하기 때문에 고가의 니켈, 코발트를 함께 추출하는 NCM 재활용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소비자는 급속충전에 목마르다"
올해 행사에서 배터리 셀 기업들이 하나같이 급속 충전 기술들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주행거리에 대한 니즈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서 급속 충전이 소비자들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사이를 두고 고민할 때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이 됐다.
고주영 삼성SDI 부사장은 "내부적으로 참고하는 외부 기관의 컨설팅 결과에 따르면 고객들이 전기차와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요소는 2022년 주행거리·충전 인프라, 2023년 비용, 2024년 급속 충전으로 나타났다"며 "주행거리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 채워졌지만, 전기차 보급이 넓게 이뤄지면서 급속 충전이 필요하다고 소비자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셀 기업들은 우선 5분 충전에 300㎞를 주행할 수 있다면 내연기관차와 경쟁해볼 만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삼성SDI가 9분 충전에 600㎞를 가는 배터리를 2026년에 양산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같은 분석에 바탕을 둔 것이다.
다만 급속 충전을 할 경우 충·방전 효율이 낮아진다는 점, 급속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 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점으로 제시됐다.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전무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한 게 급속 충전 "이라며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충전 속도를 높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분 충전에 주행거리 500~600㎞를 주행할 수 있는 시장을 주류로 보고 이를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SK온은 이번 행사에서 18분 만에 급속 충전이 되는 어드밴스드 SF 배터리를 선보였다. 이 배터리는 기존의 SF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는 9% 높이면서 급속충전 시간은 유지한다. 이존하 SK온 부사장은 "현재 나와 있는 350킬로와트(kW) 급속 충전기로 15분 급속 충전까지 가능하다"며 "급속 충전 시간을 10분까지 낮추려면 최소 450kW 이상의 급속 충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 벤처도 전고체·리튬메탈 등 선보여
올해 인터배터리에서는 중소 벤처기업들이나 스타트업들도 혁신적인 제품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유뱃(UBATT)은 항공 모빌리티 시장을 겨냥한 리튬메탈 배터리인 '스트라토스(STRATOS) 시리즈'를 선보였다. 신제품인 스트라토스600의 경우 7.4암페어시(Ah) 용량에 600Wh/kg의 에너지 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
티디엘(TDL)은 산화물계 전고체 전해질을 선보였다. 이 회사는 전고체 전해질을 30~90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시트로 제작해 롤투롤 압연 공정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하는 기술을 제안했다. 회사 관계자는 "우선 화재 안전성이 강조되는 ESS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11은 다양한 종류의 나트륨(소듐)이온 배터리를 공개했다. 에너지 11 관계자는 "연말까지 160Wh/kg의 에너지밀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ESS용으로 공급하기 위해 국내외 다양한 고객사와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인터배터리2024는 전 세계 18개국 579개 배터리 업체, 1896개 부스가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주최측인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약 12만명의 참관객이 방문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이는 지난해 열렸던 인터배터리2023(참관객 수 10만7486명)보다 약 2만명 늘어난 수치다.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레천 휘트머 미국 미시간주지사를 비롯해 필립 골든버그 주한미국대사, 제프 로빈슨 주한호주대사,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대사 등 배터리 주요국 인사들도 전시장을 찾았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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