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 이끈 기업들
도요타·스바루·미쓰비시 등
실적·미래 성장잠재력 우수
증시 단기간 급등했지만
1989년 거품 경제 때와 달라
닛케이 내년 말 5만5000선 전망도
거침없이 질주 중인 일본 증시는 골드만삭스가 칭한 7대장 기업 ‘사무라이7’(S7)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7은 미국 증시 랠리를 주도한 나스닥 7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매그니피센트7’(M7)이 있듯 일본 증시를 들어 올린 7곳 기업을 표현한 용어다. 거품 경제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한 닛케이225지수는 4만선 안팎을 유지 중이다.
S7은 자동차 업체 도요타자동차, 스바루,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미쓰비시, 반도체 장비 제조 기업인 어드반테스트, 도쿄일렉트론, 스크린홀딩스, 디스코로 구성됐다. 코로나19가 터졌던 2020년 이후 영업손실을 기록하지 않은 데다 미래 성장잠재력까지 우수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요타, 시총 540조원 돌파…미쓰비시, 워런 버핏 투자 후 4배 올라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 기업 도요타 시가총액은 지난 1일 60조엔(약 54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3일 일본 기업 최초로 50조엔을 돌파한 지 3주 만이다. 도요타 주가는 올해 첫 거래일 이후(7일 마감가 기준) 39% 급등하며 7년 반 만에 삼성전자를 다시 제치고 아시아 시총 2위에 올라섰다. 도요타는 2023년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순이익이 전년 대비 80% 증가한 4조9000억엔으로 사상 처음 4조엔을 돌파할 전망이다. 매출도 17% 늘어난 43조50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됐다. 하이브리드 원조인 도요타는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 흐름의 수혜를 크게 입었다는 평가다. 도요타가 지분을 20% 가진 자동차 업체 스바루도 올해 지금까지 21% 상승했다. 스바루의 전체 차량 판매 대수 70%는 미국에서 발생한다.
미쓰비시는 ‘가치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분 투자한 기업 중 하나다. 2020년 5% 지분 취득에서 최근 9%까지 비중을 늘렸다. 이 기간 주가 상승률은 약 4배에 달하며 올해로는 43% 올랐다. 엔저와 자원 가격 급등으로 인한 잉여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한 영향도 적지 않았다. 미쓰비시도 최근 신산업에서 필수적인 자원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 한다는 점에서 꾸준한 성장 기대가 나온다. 닛케이신문은 지난 4일 미쓰비시가 일본 기업 최초로 캐나다 프런티어 리튬과 손잡고 북미에서 리튬 개발에 뛰어들기로 했다고 전했다.
AI 랠리 올라탄 일본 반도체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이끄는 인공지능(AI) 랠리에 올라탄 일본 장비 기업들의 상승률은 놀라울 정도다. 반도체 세정장치 분야에서 세계 1위 스크린홀딩스 주가는 올 들어 61% 급등했다. 스크린홀딩스는 반도체 세정장치 분야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58% 뛴 도쿄일렉트론은 지난달 소니, 키엔스, NTT를 제치고 일본 시총 3위에 올라섰다. 도쿄일렉트론은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전망해 2029년까지 5년간 연구개발비에 1조5000억엔, 설비투자에 7000억엔을 투자할 방침을 밝혔다.
52% 오른 디스코는 지난 4일 닛케이225지수에 편입됐다. 디스코는 반도체의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실리콘·웨이퍼의 정밀 가공 장치, 정밀 가공 툴 등의 세계적 주요 메이커다. 2025년 매출 전망이 3680억엔으로 5년 연속 상승이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51% 상승한 어드반테스트는 AI 작업에 사용되는 메모리용 칩 테스트 장비에 대한 수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일본 반도체 장비협회(SEAJ)에 따르면 올해 일본 반도체 장비 실적은 전년 대비 27% 증가한 4조348억엔(약 36조3470억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 일본 반도체 장비 판매액이 4조를 넘긴 적은 없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집계하는 전 세계 국가 증시 중 일본 증시인 ‘MSCI Japan Index(USD)’는 올해 16.24% 상승하며 튀르키예(18.99%)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잃어버린 30년’ 굴욕 깬 S7…저평가에서 재평가로
시장에서는 현재 S7을 중심으로 한 일본 증시 랠리가 30년 넘게 저평가됐던 주식이 재평가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S7 중에서 지난해부터 지속된 AI 붐에 힘입어 크게 급등한 반도체 직접 관련주 어드반테스트, 도쿄일렉트론, 스크린홀딩스, 디스코를 제외한 도요타자동차, 스바루, 미쓰비시의 주가수익비율(PER) 평균은 11.08배다.
반면 M7에서 엔비디아를 제외한 나머지 애플, 알파벳, 메타, 테슬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의 PER은 35.72배다. 닛케이지수가 34년 만에 4만선을 돌파했지만 여전히 PER이 3배 이상 차이 나는 셈이다.
특히 S7을 중심으로 향후 이익률과 성장 동력이 탄탄하다는 점에서 향후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9년 거품 경제 시절 증시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주장이다. 다이와증권은 닛케이지수가 향후 1~2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계 모넥스그룹은 일본 민간 기업의 높은 수익률로 닛케이지수가 내년 말 5만5000선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엔저에 따른 외국인 매수세, 중국 증시 부진에 의한 반사 효과, 동맹국 미국 증시의 호황 등 대외 요인을 제외하고, 기업이 유망한 미래 먹거리를 계속 창출해야 일본 증시의 상승세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S7의 매출과 이익률의 규모가 더 확대돼야 M7처럼 주가가 높게 뛸 수 있다”고 짚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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