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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천만영화’ 공식은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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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투자 받은 천만감독들 줄줄이 참패
'예고편만 봐도 알아' 똑똑해진 관객들
보수적 투자·낡은 의사결정 안 통해
"과감한 기용, 신선한 기획 필요"

서울 한 극장전경[사진출처=연합뉴스]

서울 한 극장전경[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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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극적인 서사 구조를 차용한다. 눈물 짜는 신파, 헐렁한 코미디도 한스푼. 액션 또는 역사적인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극장 ‘천만영화’의 공식은 대부분 이렇다.


영리해진 관객들은 이를 간파했다. 온라인상에는 "예고편만 봐도 영화 다 봤네"라는 ‘밈’(유행 콘텐츠)이 나돌 정도다. 관객들은 천만 감독들이 내세웠던 낡은 구조에 속아줄 이유가 없어졌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등장하며 영화 접점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거나 IPTV를 통해 개별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 OTT로 언제 어디서든 영화 감상이 가능하다.

시장은 빠르게 변화했는데, 과거 엄청난 성공을 맛본 천만 감독들은 ‘천만영화’ 공식을 버리지 못했다. 수백억원을 쏟아부은 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영화 ‘도둑들’(2012) ‘암살’(2015)로 쌍천만 관객을 모은 최동훈 감독이 만든 SF영화 ‘외계+인’ 1·2부는 제작비 7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1부(154만명)와 2부(142만명) 모두 외면당했다. ‘명량’(2014)으로 한국영화 최다 관객 1761만명을 모았던 김한민 감독은 순제작비 400억원을 쏟아부은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457만명을 모으는데 만족해야 했다. 손익분기점(750만명)도 넘기지 못했다. ‘신과 함께’ 1·2(2017·2018)를 만든 쌍천만 감독 김용화도 SF영화 ‘더 문’으로 51만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제작비가 280억원(손익분기점 640만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민망한 성적이다.

최동훈(왼쪽부터) 김용화 김한민 감독[사진출처=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최동훈(왼쪽부터) 김용화 김한민 감독[사진출처=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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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들을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업계 대기업들이 기획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두 ‘천만 감독’이 연출하고 수백억원대 제작비를 쏟아부은 기대작이었지만 실패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에서 만드는 영화는 전통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태동한다. 기존 상업영화 공식을 완전히 버리기 쉽지 않고, 결국 안정적인 구조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극장 영화를 더는 안정적인 투자처로 보지 않고 있다. 대작들의 성적이 줄줄이 부진해 투자도 더 위축됐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베테랑 영화인도 극장 흥행 판도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며 "여러모로 불안정한 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A씨 역시 "예전에는 영화 책(시나리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지만, 제작되는 편수가 많지 않아서 받아보는 대본이 귀할 정도"라며 "영화를 하고 싶지만 제작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OTT 작품을 하게 된다. 공개를 앞둔 작품이 여러 편이고, 출연을 검토 중인 작품도 모두 OTT용"이라고 귀띔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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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OTT 기세는 무섭다. 젊은 연출자들의 신선한 감각과 과감한 도전들이 OTT에 몰리면서 극장판보다 더 우수한 드라마·예능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분석적이기까지 하다. OTT 관계자는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하다"며 "분·초 단위로 시청자를 분석한다. 여성, 남성 중 누가 많이 봤는지, 몇시에 주로 시청했는지, 어느 장면에서 시청자가 이탈했는지 등 촘촘하게 분석해 곧장 현장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천만 감독’들이 살아나려면 기존 성공 공식을 탈피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성공한 영화인들이 자신의 성과에 갇혀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영화 공식을 제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영화 제작 관계자는 "젊은 창작자를 과감하게 발굴·투자하고, 자유로운 작업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나이든 감독도 얼마든지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데, 이들이 검증된 영화 공식만 반복한다면 극장 영화의 미래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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