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이주못한 장애묘와 함께사는 캣맘 부부
“내 자녀거니” 300만원 넘게 사료값·치료비
#. 너의 이름은 ‘네로’. 심하게 우는 새끼 고양이가 있다며 이웃 식당 주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내가 갔을 때 너의 머리가 두 개로 쪼개져 있었고 눈은 피와 고름투성이였어.
#. 당신은 ‘캣맘’. 내가 5년 전 길고양이로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무서운 동물의 습격을 받았어. 오른쪽 머리가 으깨져 앞을 볼 수 없었고 고통 때문에 울부짖을 때 당신이 나를 안아 어디론가 데려갔어.
검은 고양이 네로와 김보경(50대) 씨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김 씨는 상처입은 새끼 길냥이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고 수술이 시작됐다. 너무 어려 마취할 수 없었던 네로가 울부짖는 소리만큼 곁에 있던 이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네로의 안구 한쪽은 적출됐다.
첫 안구적출 수술부터 염증이 재발해 모두 3차례 수술까지 3~4개월 동안 길고양이 네로한테 들어간 수술비는 300여만원. 김 씨는 ‘캣대디’인 남편과 함께 할부로 카드를 그었다.
네로를 포함해 지금 이들 부부가 데리고 있는 고양이 가족은 지금 9마리이다. 모두 장애묘이다. 장애 때문에 선택받지 못했거나 입양 시기를 놓친 고양이들이 집에 남아있다.
김 씨 부부는 당시 부산 기장군에서 ‘고양이로 통한다’라는 뜻의 유기묘 보호 비영리민간단체인 ‘캣통’을 운영하고 있었다.
‘범백’은 혈구감소증으로 치사율 90%에 이르는 백혈병을 앓았다. 80만원 넘는 입원 치료 끝에 건강을 찾아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고양이나 개와 친밀했던 김 씨와 달리 남편 최정우(50대) 씨는 반려동물과 동행하는 삶은 별로(?)였다. 아내 때문에 길고양이 ‘용팔이’를 처음 가족으로 맞을 때도 주변에 “난 아빠 안할래, 그냥 삼촌으로 불러”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용팔이의 ‘엄마’가 되면서 도리없이 최 씨는 용팔이의 아빠가 됐다. 지금은 최 씨가 집에 도착하면 용팔이부터 찾는다.
동네에서 산책하다 자주 마주쳤던 길냥이 용팔이는 원인모를 사고로 턱 골절 수술을 받은 뒤 5년 전 ‘캣통’ 가족이 됐다.
이 부부가 ‘그린’을 만난 날은 처참했던 기억이 가슴을 누른다. 눈에 담뱃불로 지진 화상을 입은 그린이는 수술을 받았지만 눈을 스스로 깜빡일 수 없는 심각한 상처가 남았다. 주기적으로 안약을 넣어줘야 했던 그린이는 평생 그렇게 살다 몇해 전 떠났다.
수다쟁이 ‘옥이’는 영양실조에 복막염을 앓다 구조돼 복수를 빼주는 치료와 보호 끝에 살아났다. 온천동 4구역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된 ‘토르’는 한쪽 뒷다리가 없다. ‘옹이’는 성대를 잃어 소리를 내지 못하는 고양이고, ‘공주’는 피부병과 면역저하 질병을 앓아 입양시기를 놓쳐 이 집에 산다.
젖을 떼지 못한 새끼들이 캣통에 들어오면 김 씨의 차는 고양이 유모차가 됐다. 그는 우유를 먹이기 위해 새끼들을 차에 태우고 다니며 바깥일을 봤다. 한때는 3마리까지 불어난 새끼 고양이들을 차에 태우고 2시간마다 끼니를 챙겨주며 일보러 다녔다.
이들 부부는 2018년 부산 기장군의 한 상가 3층에서 유기된 장애묘를 보호하는 동물문화네트워크 ‘캣통’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0년 부산 금정구 장전동으로 옮겨와 사회적협동조합 ‘달달한 동물세상’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이후 울산에도 지부를 세워 동물복지를 위한 공익활동을 벌이고 있다.
달달한 동물세상은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에서 혁혁한 ‘전공’을 거뒀다. 2019년 7월 시작된 온천4구역 재개발 사업 철거 기간에는 전국 최초로 민관 합동 동물구조네트워크를 구축해 300여마리의 길냥이를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가운데 입양을 보내거나 120여마리를 중성화 수술해 이주시켰고, 60여마리는 보호센터에서 생명을 이었다.
이 ‘온천냥이 구조단’ 사업은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어 다른 지자체 사업에 교과서가 됐다. 부산시의회는 재개발지역의 길고양이 보호 조례를 제정해 공사하기 전에 해당 지역에 사는 길고양이의 이주와 보호 대책을 마련하게 됐다. 영역동물인 고양이의 입양과 임보(임시보호), 이주 사업이 길을 연 것이다.
온천동 재개발 지역에서 구조한 400여마리는 지자체의 중성화수술 지원 등 구조 매뉴얼대로 입양과 이주를 거쳐 제 삶을 찾았다. 이 성공한 민관협력 사업은 울산에도 소문났다. 2020년 울산 중구 복산동 재개발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돼 건물 잔해에 파묻혔을지도 모를 380여마리의 ‘운명’을 걸머졌다.
현재 장전동에서 ‘달달한 동물세상’을 꾸리는 김보경 씨(부이사장)는 “고양이의 입양과 보호, 이주만이 목표가 아니고 어린이와 어르신을 위한 치유·힐링 프로젝트 등 사람과 함께하는 반려동물 문화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에선 마을에 사는 고양이를 ‘우리동네 고양이’라 표현할 만큼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라며, “장수와 복을 부르는 동물로 통하는 고양이가 우리나라에선 영악하거나 불길한 이미지로 변해 공포영화에 등장할 때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지구는 사람만이 행복해야 하는 별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행복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김 씨의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 최정우 씨는 지금도 매월 300~400만원가량 사료값과 치료비 등으로 개인지갑을 턴다. 때때로 후원물품이 들어와 시설을 운영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도 캣맘들의 봉사와 자발적인 기부에 길냥이와 장애묘들이 의지가지한다.
최정우 이사장은 “달달한 동물세상이 장애묘나 길고양이의 보호시설에 그치지 않고 입양과 양육, 공존교육, 힐링테라피, 일자리 창출 등 사람과 함께하는 동물복지문화센터로 자리잡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고양이 돌봄과 공공급식 사업, 철거지역 동물보호 법제화 작업 등 지구별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공존하는 프로젝트들이 켜켜이 쌓여있다”며 웃었다.
동물복지가 잘 보장된 마을이 역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생뚱스럽지만 사람 사는 모든 동네가 이른바 ‘고양이 8학군’으로 불리는 게 이들의 꿈이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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