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나 유족에게 국가도 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2011년 피해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약 13년 만, 2017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6년6개월 만이다.
이 사건은 2011년 4월 서울 아산병원이 급성호흡부전을 주 증상으로 하는 원인 미상의 중증 폐렴 임산부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고 역학조사가 실시되면서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8월 가습기 살균제를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했고, 같은 해 11월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에서 판매하는 6가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2월에야 동물실험 결과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인산염과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의 독성을 확인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SK케미칼(옛 유공)이 처음 개발한 1994년부터 판매가 중단된 2011년까지 국내에서 20개 종류가 연간 60만개가량 판매돼 이를 사용한 사람들은 894만~108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환경운동단체 관계자들이 가습기살균제 SK·애경·이마트 선고공판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당초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고 허위로 표시했다는 이유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판매사인 홈플러스 등 4곳에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2년 1월 국가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제조·유통한 업체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 차원의 피해자 조사는 2013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나서야 시작됐다. 검찰은 2016년에야 전담수사팀을 구성,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대표와 관계자 2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 가운데 신현우 전 옥시리켓벤키저 대표는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6년 형이 확정됐다.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은 2021년 1심에선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올해 1월 2심에서 각각 금고 4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7년 2월 제정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그해 8월 시행되면서 구제계정운용위원회가 설립됐으며,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해 온 사업자 18곳에 피해구제 분담금 1250억원을 징수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지원 대상 피해자는 5691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1262명이다.
당초 피해자와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은 2016년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국가에 대한 청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이후 원고 중 5명이 국가를 상대로 패소한 부분만 항소해 그동안 2심이 진행돼왔다. 재판부는 6일 "PHMG나 PGH 등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와 그 공표 과정에서 공무원의 재량권 행사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이라며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원고 5명 중 2명은 이미 위자료와 동일한 성격을 가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을 상당 액수 지급받았으므로 제외하고, 나머지 3명에게 각각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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