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展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위트가 빚어낸 '뒤엉킴'
국제갤러리 K2·K3서 3월3일까지
"내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이 지하 쇼핑몰 또는 한적한 지하철역과 별다른 바 없길 바란다. 즉 미술이 특수하거나 특별하다고 느끼는 감상자의 마음에 균열을 내는 경험이 되기를 희망한다."
거대한 운석 덩어리가 떨어진 전시공간 중앙, 조명까지 어두운 전시장에서 쪼개진 운석 조각 사이로 찌그러진 별 두 개가 반짝이고 있다. 구멍 뚫린 천장, 카펫 위에 떨어진 운석 덩어리 앞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고, 오가는 관객마다 이게 가짜인 줄 알면서도 실감 나는 연출에 "진짜인가" 망설이며 연신 작품을 살핀다.
"당연하게 여기는 정의,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정의들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표현해 그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미술가의 책임이다." 작가는 가짜와 진짜를 오가는 작품에 대한 관객의 혼란을 두고 '믿음에 대한 오류'라고 정의한다. 정형화된 기존 인식을 비트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실재와 감상자의 해석 개념을 뒤엉키게 만든다.
다양한 형식과 매체 범주를 넘나들며 사회·문화·정치·예술에서 나타나는 서구의 근대성, 또 이에 대항하는 비서구권의 독립적 저항 간 발생하는 애매모호한 인식 질서를 비판해온 김홍석 작가가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를 1일부터 국제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뒤엉킴(entanglement)’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일 유학 시절 제 눈을 뜨게 한 교수의 '너는 한국적 현대미술을 보여줘야 한다'는 질문이 없었다면, 아직도 서구 미술에 더 깊숙이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는 서구 미술이 정상적 미술로 인식된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상이란 단어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대중의 인식에 어떻게 심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이번 작업이 출발했다"는 작가는 "대중의 인식과 달리 현대미술은 발전해왔고 상당히 진행돼있는데, 이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분법적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까. 여기에 대한 도전적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전시가 시작되는 K2 1층의 작품들은 대중이 흔히 학습해 온 당연한 정보들이 통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익숙한 개념들이 해체되고 엉켜 있는 상태는 관객에게 친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을 선사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사군자를 시작으로 연꽃, 잡목 등을 그린 회화 작품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묵향 가득한 사군자가 아니라 돋보이는 두터운 마티에르(mati?re) 사군자는 동양의 군자(君子) 정신과 태도를 서구 모더니즘 개념으로 지워버리는 동시에 현대 동양인의 정신 분열적 물질성을 시사한다. 중국 국민화가인 치바이스(齊白石)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가는 가장 동양적 이미지를 서구적 현대회화의 표현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다.
치바이스는 "그림의 묘미는 사(似)와 불사(不似) 그 사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같음(似)은 구조와 형태, 조형적 의미를, 같지 않음(不似)은 신명과 영운이 넘치는 묘(妙)를 뜻하는데, 그가 말한 '그 사이'는 결국 창작자가 이를 수 있는 예술적 경지이자 심미적 이상을 지칭한다. 김홍석은 '그 사이'에서 그 지층을 구성하는 정신적 토대에 전혀 새로운 물성을 입혀 분열적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작가는 "결국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술은 무엇을 하는가' 일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존의 인식, 즉 아름다움·완전함·옳음의 인식 체계를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때는 별이었으나 현재는 하나의 돌에 불과한 본체, 그 내부에서 엿볼 수 있는 별과 그 표상 간 조화에서 보이듯 관객은 연신 실재적 존재와 해석적 존재의 개념이 뒤엉키는 경험을 전시 내내 마주한다.
이에 작가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사회는 어디서 비롯됐고, 어디서 문제가 됐는가를 인지해야 한다"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미술로 풀어가기 어렵다. 결국 작가는 기존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게끔 노력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된다.
김홍석 작가는?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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