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교통 정책의 범람이다. 국토교통부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대중교통비 지원책을 쏟아내더니 이제는 개별 지자체들이 '땅따먹기식' 동맹까지 맺으며 다른 지자체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선의의 정책 경쟁이고 시민들의 선택권이 넓어졌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나 정부와 지자체들의 따로 움직이는 교통 정책에 힐문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경쟁에서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가 초반 흥행몰이에 성공한 점은 분명하다. 6만원대 무제한 정기권 혜택을 앞세워 31일까지 누적 판매량 28만장을 돌파하더니 준비된 물량은 바닥나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이 사실상 동일 생활권인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만 사용 가능한 기후동행카드의 한계는 갈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경기도와의 협의는 쉽지 않고 개별 지자체를 타깃으로 한 공략도 생각보다 더디다. 출시 일주일이 지나서야 군포시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군포시와 서울시 사이에 거주 중인 안양시와 과천시민의 소외가 더 두드러졌을 뿐이다.
효용성 논란은 한참 전부터 예고된 사안이다. 지난해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 모두 서울시와 경기도의 인기 정책이 예산 낭비와 이용자 혼선을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교통 전문가들도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는 주민들의 편의와 효율성을 위해선 단일 교통정책을 추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보기 불안한 것은 선의의 정책 경쟁이 아닌, 단순 힘겨루기로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날 라디오에 출연, 기초 지자체들과의 협의 가능성에 "일단 속도를 낼 생각"이라면서도 "경기도가 들어와 주면 좋은데 좀 망설이시는 것 같다"며 사실상 경기도를 자극했다.
경기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혜택 대상에 광역버스와 신분당선이 제외돼 도민의 실질적인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물론 협의를 통해 혜택의 범위를 조정할 수 있으나 도는 더 월등한 정책이라고 자신하면서 'The 경기패스'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서울시와 경기도 간 '힘겨루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달 초 불거진 '명동 퇴근길 대란'에서도 인파 분산을 위한 정류장 분산 대책을 놓고 불편한 입장이 새어 나왔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서울 메가시티'를 놓고는 경기도가 "국토 균형 발전을 역행하는 선거용 정책"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동일 생활권에 놓인 지자체들의 정치적 셈법으로 시민들만 헷갈리고 있는 셈이다.
선거철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교통개발 정책이라지만 시민들의 생활권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요인인 만큼 정치적인 거품을 빼고 유리돼 있는 행정권과 생활권을 정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명동 퇴근길 대란'에서 수도권 교통 문제는 어느 한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다.
일단 던져놓고 '따라와라'라는 식의 일방적 추진도 반복돼서는 안 된다. 지난해 8월 국토부를 시작으로 서울시, 경기도가 줄줄이 교통 할인 정책을 내놓은 게 이 혼란의 시작이다.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발표'라는 일부 지자체의 반발 속에 기후동행카드 출시 직전에야 마련된 국토부·수도권 지자체의 만남도 결국엔 각자의 홍보 무대로 퇴색됐다.
이 같은 상황을 "이용자의 선택권 확대"라고 포장하는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총선용 선심 사업은 더 쏟아질 게 뻔한데, 교통카드 하나 통합하지 못하는 정부의 '조정 능력'에 기대를 걸어도 되는지 우려스럽다. 사회부 배경환 차장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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