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적용 대상 놓고 현장 혼선
영세 상인들, 적용 여부·세부 내용 몰라
"사업주에 지침 적극 전달해야"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10년째 김치찌개 집을 운영하는 최모씨(60)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아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본격적인 저녁 식사 시간대를 앞두고 주방 한편에선 직원 한 명이 펄펄 끓는 국물을 그릇에 분주하게 퍼 나르고 있었다.
이곳은 최씨를 비롯해 주방 직원 한 명과 서빙 아르바이트생 3명, 배달 라이더 1명이 근무하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이다. 지난달 27일부터 확대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최씨는 본인의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최씨는 "바빠서 뉴스를 챙겨볼 시간이 없었다"며 "우리가 건설 현장에서 몸 쓰는 사람들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처벌받을 수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중처법이 뭐예요?"…오해도 빈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된 지 엿새째를 맞은 가운데 영세 상인 상당수는 본인의 사업장이 법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관련 내용까지 정확하게 숙지하진 못한 모습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대중목욕탕을 운영하는 김모씨(48)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얼마 전 뉴스에서 봤다"고 말했지만, 법 내용까지 정확하게 알진 못했다. 김씨는 "일하다 보면 작은 부상 정도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건데, 이걸로 처벌까지 하는 건 너무 과도한 게 아닌가 싶다"며 "만에 하나 직원 잘못으로 다치더라도 사장인 내가 처벌받아야 하는 거냐"라고 물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에 대응해 직원 수를 줄이고자 '키오스크(무인 주문기)' 도입 등을 준비하는 상인도 있었다. 중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43)는 "중식당 특성상 조리 도구가 날카롭고 화기 사용도 잦아 큰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기 힘들어 최근 노무사와 상담을 마쳤다"며 "초기 자금이 들긴 하지만 키오스크를 도입하면 아르바이트생 1~2명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업체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인들이 당장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과도한 우려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중대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또는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손가락이 베이거나 팔이 데는 등 경미한 부상은 법이 명시한 중대재해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엄격하게 이뤄진다. 사업주의 의무 위반과 근로자의 사망 및 부상 사이에 고의 및 예견 가능성, 인과관계가 명확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
우재원 공인노무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성립되려면 기본적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단순히 식당 근로자가 다친다고 처벌받는 게 아니다. 상인들이 법안 내용을 잘 모르다 보니 오해가 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사업주 올바른 숙지 도와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업장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 641개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해 '조치를 취했다'고 답한 비율은 22.6%에 그쳤다. 반대로 '별다른 조치 없이 상태를 유지'하거나 '조치사항을 검토 중'이라고 답한 비율은 76.4%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전국 50인 미만 사업장 83만7000개를 대상으로 사업주가 스스로 사업장 내 위험 정도를 평가해 지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소상공인들은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정동식 전국상인연합회 회장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5인 이상 사업장까지 대거 포함되는 바람에 불안해하는 상인이 많다"며 "유예 기간을 충분히 뒀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모르고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은 분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소상공인을 위해 정부가 법안의 올바른 숙지를 돕고, 적극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배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웬만한 규모 이상의 기업은 노무 담당 및 산업 안전 책임자가 따로 있어 법안 내용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지만, 소상공인의 경우 그런 여력이 되지 않아 지금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훨씬 적극적으로 나서서 소상공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법안의 내용을 올바르게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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