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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의대 정원 확대로 필수 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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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리겠다.’


정부·여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갑자기 튀어나온 보도는 다른 뉴스들을 덮어버릴 정도의 블랙홀 선언이었다. 예상대로 국민의 관심과 호응은 대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었던 2020년 당시 의사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려다가 코로나19 시기 의료계 파업으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이후 다시 제기된 의대 정원 확대 카드가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국민은 반신반의하며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의학 기술은 세계적으로 뛰어나며 의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환자 접근성도 좋다. 이런 까닭에 ‘의료 선진국’이라 여겨질 만큼 국민건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사태가 악화하면서 우리 국민은 지방이나 취약지 의료 공백의 심각성을 경험했다. 즉, ‘필수 의료 붕괴’ 현상으로 인해 보건 의료체계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며 민생 정책의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그 결과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산부인과를 시작으로 흉부외과, 소아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붕괴 위기가 더욱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설 연휴 근무 중 집무실 책상에서 과로로 인해 돌연사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중환자를 담당하던 호흡기내과 송주한 교수는 세미나 중 뇌출혈이 발생했지만 졸고 있는 모습으로 착각되어 대응이 늦어졌고, 장기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결국 사망했다. 응급수술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평생 병원 인근 자택에서 대기하던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는 병원 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많은 사람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해마다 배출되는 3058명의 의사는 필수 의료 영역보다는 소위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과 같이 노동 강도가 덜하고 수익이 더 나는 인기과를 선택하면서 의료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신현영 의원

신현영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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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의사들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노동의 시각으로 진료과목을 선택하는 현상을 어찌 개인의 문제로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조차도 본인이 의사라면 “수익이 보장되는 근무 환경이 좋은 과를 선택하겠다”고 고백했다. 필수 의료 붕괴 문제는 국가적으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해결될 수 있다는 정부 부처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필수 의료의 열악한 근무 현실을 방치한 채 의대 정원만 무리하게 확대한다면 부실 의대, 질 낮은 의사와 질 낮은 의료 행위들, 불필요한 의료 과잉 공급, 건강보험 재정의 위협, 의료상업화로 인한 도덕적 해이 등 문제들이 난무할 것이다. 낙수효과로 인해 필수 의료 공백 현상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은 허상에 불과하다. 10년 후, 오히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행정력만 낭비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때가 되면 필수 의료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 외국인 의사 영입을 검토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의료현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실력 있는 정부라면 정원 확대와 같은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발표하기 전 필수 의료 의사 확보를 위한 근거 있는 의사 인력 추계(늘려야 한다면 어느 순간은 줄여야 한다)를 바탕으로 적절한 보상체계, 3D 근무 현실 개선을 위한 제도적 노력, 중환자를 진료할수록 의료소송을 많이 당하는 의료사고 징벌 주의에 대한 안전망 구축, 국가 책임 보험 설계, 필수 의료 전공 수련의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 및 책임 강화 등 실질적인 대안을 먼저 발표했어야 했다. 그 이후에 의대 정원 확대를 후속 과제로 발표했다면 의료계가 반대할 명분을 충분히 상쇄시켰을 것이다.


우리 아이 의사 만들기, 초등 의대 입시반, 이공계·자연계 학생들의 N수생 의대 입시 도전과 같은 우리 사회의 ‘의사 선호 현상’이 포퓰리즘으로 가지 않도록, ‘좋은 의사,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의사상이 무엇인가?’라는 성숙한 담론으로 전환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직장, 고수익을 바라며 의사 가운을 입는 이보다 인류애를 바탕으로 의학의 발전과 건강에 대해 고민하는 의사들이 주류를 이룰 때 저출생·초고령 사회 위기에서 해법과 기량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의료를 세계적 수준으로 이끌어 온 14만명의 의사는 앞으로도 국민 건강지킴이로서의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란다. 의사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무를 강화해 나갈 때, 우리 사회의 존중과 존경, 그리고 환자와의 신뢰 관계가 공고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의대 입시, 의대 교육, 의사 수련까지 이르는 일주기 의사 양성 과정에서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무와 자부심,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국회와 정부, 의료계가 같이 협력하여 올바른 의사 양성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2024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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