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외유성 출장·쪼개기 후원 등
과거 발생 의혹 폭로전 양상으로 불거져
내외부 후보군 선정 과정 '주도권 싸움' 관측
포스코·KT 등 소유분산기업 사례와 흡사
9년 만에 새로운 대표 선출을 앞둔 KT&G 가 안팎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과거 업무상 목적으로 회사의 지원을 받아 출장을 간 일부 사외이사의 외유성 일정에 대한 문제 제기에 이어 담배 관련 규제를 무마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했다는 의혹이 내부 폭로로 불거진 것이다. 전·현직 사외이사들이 자사주 감시에 소홀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행동주의펀드가 이들을 상대로 소 제기를 청구하기도 했다. 앞서 포스코와 KT 등 소유 구조가 여러 주주로 분산된 소유분산기업에서도 대표 선출을 앞두고 비슷한 잡음이 발생한 탓에 KT&G도 신임 사장 후보군을 추리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판세 흔들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부조리 쇄신용 내부 고발일까 '순혈' 견제용 흠집내기일까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KT&G에서는 회사가 매년 회삿돈 수천만 원을 들여 사외이사들에게 외유성 해외 출장을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KT&G 사외이사들은 2012년부터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2021년을 제외하고 매년 한 차례씩 일주일가량 일정으로 해외 출장을 갔는데 회사 측이 이들에게 비즈니스석 항공권과 고급 호텔 숙박료를 지원하고, 별도 식대·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하루 500달러를 지급했다. 문제는 과거 사외이사 중 일부가 출장지에서 업무와 무관한 크루즈 관광을 하거나 배우자를 데려가는 등 외유성 일정을 소화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KT&G 측은 사외이사 해외 출장과 관련해 "규정에 따라 관련 업무 수행을 지원하고 있다"며 "현지 시장과 생산시설 방문, 해외 전문가 미팅, 신사업 후보군 고찰 등을 목적으로 해외법인뿐만 아니라 주요 시장을 대상으로 연 1회, 7일 이내로 해외 출장을 실시하고 있고 비용은 1인 평균 680만원 수준(항공료 제외)으로 사내 규정을 준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부 사외이사의 배우자 동행에 대해서는 "동행한 이들은 개별적으로 개인 비용을 들여서 갔다"면서 "최근 문제 제기가 된 사례들은 2012년과 2014년 사안으로 현직 사외이사와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KT&G가 2017년 일부 직원들을 동원해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최근 제기됐다. 당시 담배 관련 규제를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단행한 조치라는 주장과 함께 직원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한 휴대전화 메시지와 후원금 내역 등이 담긴 내부 문건 등이 언론 보도를 통해 노출됐다. 이는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안이다. KT&G 측은 "회사는 해당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없다"면서 "필요한 경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밖에 지난 17일에는 KT&G가 담배와 관련한 미 보건 당국의 규제를 위반하고, 담배 제품 승인과 심사 과정에서 잘못된 자료를 제출해 현지 주(州) 정부에 낸 1조5400여억원의 장기예치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부 관계자의 주장이 전해졌다. 장기예치금은 미국에서 담배를 판매하는 업체의 잘못으로 흡연자의 건강이나 신체상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주 정부에 맡겨두는 돈이다. KT&G 측은 "아직 법규 위반사항에 대한 통보나 제재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현재까지 회사와 관련해 상기한 문제가 발생한 바는 없으므로 납부 시기에 따라 2025년부터 각 금액을 순차적으로 반환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해명했다.
포스코·KT도 판박이…'소유분산기업' 대표 선임 홍역
이같은 의혹은 KT&G가 지난달 28일부터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후보군 선정 절차에 착수하고, 백복인 현 사장이 지난 9일 이사회를 통해 4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뒤 연달아 터져 나왔다. 백 사장은 KT&G 공채 출신으로 2015년 첫 수장에 오른 뒤 3연임했다. 그의 재임 기간과 맞물린 의혹이 잇따라 표면화되자 이번 신임 사장 선출 과정을 심사할 사외이사들을 흔들어 내부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를 등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KT&G의 사장 선임 절차는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크게 지배구조위원회(지구위),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주주총회 승인 등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이 가운데 1단계를 담당하는 지구위 대부분은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2단계를 맡은 사추위는 전원 사외이사다. 회사 이사회도 8명 중 사내이사 2명을 제외한 나머지 6명 모두 현 사외이사가 구성원이다.
이들 사외이사는 모두 백 사장의 재임 기간인 2018~2021년에 선임됐다.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 과거에 벌어진 일들이 최근의 사태처럼 쟁점화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내부 관계자의 증언이나 증거가 될만한 자료까지 공개하고 폭로전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그만큼 현 체제를 흔들어 외부 후보군에 힘을 싣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추측했다.
내부 출신이 수장에 올랐던 포스코와 KT도 대표 선출 과정에서 비슷한 잡음이 있었다. 공채 출신 최정우 회장이 최근 3연임을 포기한 포스코는 지주회사인 POSCO홀딩스 가 2019년 중국과 지난해 캐나다에서 각각 해외 이사회를 열었는데 사외이사들이 호화 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KT 내부 출신인 구현모 전 대표도 과거 벌어진 '쪼개기 후원'에 연루된 혐의로 재임 중이던 2022년 노조와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됐다. 이는 모두 차기 대표를 선임하기 위해 후보군을 추리는 과정에서 폭로됐다.
KT&G를 포함해 지배구조가 안정적이지 않은 이들 소유분산기업에서 대표 선임을 둘러싸고 폭로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편으로는 이들 기업에서 대표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T&G 지분 약 1%를 소유한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이달 초 KT&G 사장 선임 절차에 대해 "말장난 밀실 투표"라고 비판하면서 "지배구조위원회-사장후보추천위원회-이사회가 백 사장 임기 내 선임된 사외이사로 구성된 사실상 동일한 집단"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FCP는 또 2001년부터 KT&G 이사회의 전·현 이사들이 자사주 1000만여주를 소각하거나 매각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데 활용하는 대신, 재단·기금에 무상으로 증여해 회사에 1조원대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면서 최근 이들을 상대로 소 제기를 청구했다. 이에 따라 경영진을 감시할 수 있도록 대표 측이 아닌 주주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KT&G 지구위는 지난 11일 사외 후보 14명, 사내 후보 10명 등 모두 24명을 차기 사장 후보군(롱리스트)으로 확정했다. 이달 말까지 사추위에 추천할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1차 숏리스트)를 선정할 계획이다. 사추위는 심사를 거쳐 다음 달 중순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2차 숏리스트)를 압축한 뒤 명단을 공개하고 다음 달 말 최종 후보자를 확정할 예정이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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