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달러 이상 수준으로 상승 땐 공공요금 인상 압력 거세질 듯
정부가 설을 앞두고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국제유가가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국내 기름값은 14주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제유가가 정부의 예상을 넘는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기름값이 오르는 것은 물론 가스·전기료 인상 압박이 커질 수 있어 물가 안정 기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1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78.29달러로 전일 대비 1.14% 상승했다. 장중엔 4%대까지 상승하며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최근 홍해 지역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민간 선박 공격에 대응해 미국, 영국의 연합군이 공습을 개시하면서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진 데 따른 것이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9월 배럴당 9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하락하며 최근 배럴당 7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중국의 수요 둔화와 비(非)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증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의 여파가 원유 생산 및 물류의 중심지인 홍해까지 확산하면서 최근 들어 유가가 꿈틀대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재무부는 이 여파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이상 상승하고, 천연가스 가격도 25%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컨설팅 회사인 라피단 에너지의 밥 맥낼리 대표는 배럴당 90달러까지 유가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향후 중동 리스크가 어디까지 확산하고 장기화하느냐에 따라 배럴당 80~90달러 선까지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만약 이렇게 되면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4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물가 안정 기조를 확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또 설을 앞두고 당정 협의를 통해 취약계층 365만가구의 전기요금 인상을 유예하고, 16대 성수품을 집중 공급하는 한편, 정부 할인지원율을 20%에서 30%로 높여 물가 잡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은 정부가 통제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배럴당 70~80달러 선은 예상한 범위 내의 가격이라는 입장이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장은 '최근경제동향(그린북)' 브리핑에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오르면 물가에 영향이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배럴당 70~80달러는 정부 전망치이고, 예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이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설 경우다. 국제유가가 80달러 이상의 수준으로 상승할 경우 공공요금의 인상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가 2% 초반대에 안정될 것이라고 하는 전제는 유가 80달러 선인데, 그보다 올라가 버리면 조절이 안 된다"며 "우리나라가 전기요금, 수도요금 이런 걸 많이 안 올려서 물가가 덜 올랐고 그걸 한국전력이나 가스공사의 부채로 막은 것인데 한전도 이제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요동치는 국제유가에 정부도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섰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지난 14일 중동 지역 국내 석유·가스 수급 현황과 유가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해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업계(정유 4사)와 함께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국내 석유와 가스의 비축 현황을 확인했다.
세종=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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