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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공강시간처럼 일터도" 경력단절 막는 자율근무 도입한 대기업[K인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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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육아기 자율·재택근무제 활기
근무시간·장소 탄력적 조율 가능
경력단절·소득감소 막아 인기

편집자주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한 시기였어요.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느끼고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때마침 회사에 제도가 생기고 팀장님이 활용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면서 지금까지 경력단절 없이 버틸 수 있었어요."


올해로 17년 차 직장인인 김지숙 LG디스플레이 SC패널 공정개발담당 책임은 최근 2년간 회사의 제도를 활용해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그는 아들이 네 살이던 2022년 퇴사를 결심하고 상사와 면담까지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늘 친정어머니 ‘찬스’를 사용하기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육아기 자율근무제’였다.

# 포스코는 2020년 국내 기업 최초로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3년간 이 제도를 이용한 직원 중 남성 비율은 약 20%에 달한다. 또 이 제도를 포함해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들이 출산·육아 지원 제도를 이용한 비율은 2019년 23.8%에서 2023년 38.4%로 매해 증가하고 있다. 10명 중 4명꼴로 전향적인 회사 정책의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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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대디가 일과 육아를 동시에 유지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시간과 장소를 조율하는 일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자녀 등·하원 때문에 달려온다거나 갑자기 자녀가 아파 출근에 지장이 생겨 발을 동동거리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근무시간과 장소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아 결국 경력 단절과 이로 인한 소득 감소를 선택하는 부모가 나오는 이유다.

어린이집 하원과 정기회의를 모두 소화…LGD의 ‘육아기 자율근무제’

LG디스플레이가 2021년 11월 도입한 이 제도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임직원이라면 사용할 수 있는 제도로, 1년에 한 번 신청하면 연간 상시로 사용할 수 있다. 대학생들이 시간표를 짜서 아침 수업과 저녁 수업 사이에 공강 시간을 길게 확보하듯이 직원 개인의 일과 육아 상황에 따라 사무실 출근과 재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근무 시스템을 구축해 재택과 출근, 퇴근 후 재출근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휴직 대신 하루 근무시간을 모두 채워 일하는 제도이다 보니 당사자는 아이 돌봄 시간을 확보하고 업무도 할 수 있어 회사도, 동료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김 책임은 이 제도를 활용해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아들의 어린이집 하원과 오후 4시 정기 회의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김 책임뿐 아니라 여러 일하는 부모가 이 제도를 활용하면서 직접 육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LG디스플레이의 한 사내 부부는 둘 다 이를 활용해 일하면서 동시에 보육 도우미 없이도 보내고 싶었던 교육 기관에 자녀들을 등원하게끔 했다. 또 이를 통해 보육 공백이 생기는 방학 중 조부모나 기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자녀를 돌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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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책임은 "아이의 나이대별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인 만큼 꾸준히 유지됐으면 한다"면서 "육아는 이제 남녀의 문제가 아니며 (이러한 제도는) 맞벌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부모에게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추가로 도입되길 바라는 제도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좋은 제도가 이미 있는 만큼 리더분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해주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LG디스플레이는 워킹맘·대디에 국한하지 않고 유연근무제를 전 직원이 활용할 수 있게끔 확대하고 있다. 누구나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거점 오피스도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육아 여부와 관계없이 유연하게 근무시간과 장소를 조정할 수 있게 돼 일·가정 양립 제도를 활용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눈치’도 볼 필요가 훨씬 줄어든다.

‘남초’ 포스코도 육아기엔 재택근무…소득 감소도 막는다

포스코는 2020년 직원들의 출산을 장려하고 육아기 경력단절 방지를 위해 국내 기업 최초로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이면 근무 여건에 따라 4시간(반일), 6시간, 8시간(전일)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전일 재택근무는 자녀당 최대 4년 사용 가능하고, 4시간 또는 6시간 재택근무는 재직 중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다. 육아기 전일 재택근무의 경우 급여, 복리후생, 승진 등이 일반 근무 직원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포스코는 철강업 특성상 남성 직원 비중이 90% 이상인 기업이다. 아직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더 많은 육아 부담을 지우는 분위기지만, 남성 직원 역시 고민이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해 제도를 마련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부부라도 출산, 육아하면 경력단절과 소득감소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를 막을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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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3년간 육아기 재택근무를 사용한 직원 중 남성 직원의 비율은 약 20%에 달한다. 육아기 재택근무제를 포함해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들이 출산·육아 지원 제도를 이용한 비율은 2019년 23.8%에서 2023년 38.4%로 매해 증가하는 추세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아이 등원 후 10시 출근, 6시 퇴근, 생산성 유지·급여 그대로…신세계 비법은

"원래는 스타벅스 30% 할인이었는데, 이젠 압도적으로 나인 투 파이브죠." ‘회사 최고의 복지’를 두고 신세계그룹 직원들끼리 나누는 우스갯소리다. 회사가 2018년부터 도입한 주 35시간제는 전 직원이 대상이지만, 특히 육아기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면서 모든 직원에게 종전보다 하루 1시간 이상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육아기 직원들이 ‘애 때문에 또 빠진다’ 식의 눈총을 받을 일이 크게 줄었다.


여기에서 출퇴근 시간을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또는 ‘오전 8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으로 1시간씩만 조정하면 아이의 등원 또는 하원을 무리 없이 함께할 수 있다. 이영동 신세계 인사팀장은 "본사 기준 8시·4시, 10시·6시 등 근무 시간을 한 시간씩 조정하는 형태는 비단 육아기 직원뿐 아니라 주거지 위치 등 다양한 개인적인 이유에 따라 사용하고 있어 특별 취급을 받지 않는다"며 "주 35시간이 기본이지만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경우 주 25시간부터 30시간까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플렉서블 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다. 현재 30여명이 사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신세계의 주 35시간 정착은 가족친화제도 도입을 시도하는 회사들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회사 입장에선 급여를 손대지 않고 일하는 시간을 1시간 줄였으니 생산성을 높여야 했다. 임직원 사이에서도 ‘일은 언제 하냐’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 등 점포엔 고객이 방문하는데 어떻게 퇴근하느냐’ 등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 오후 5시가 되면 임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백화점은 당직제, 이마트는 교대제로 근무 시간을 맞추는 방식 역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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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초반엔 제도 정착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 에너지를 많이 썼다. 25분 집중하고 5분간 휴식하는 ‘포모도로(pomodoro)’ 집중법을 도입하는가 하면, 불필요하게 시간을 쓰는 상황을 줄이기 위해 보고 문화와 회의 문화 개선에 나섰다. 종이 보고는 필요시 1장 이내로 줄였고, 회의에서도 정해진 시간 안에 필요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회의실에 타이머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하는 시간 내 집중도가 높아지고, 생산성이 확보됐다는 설명이다.


종래엔 오후 6시에 일어나지 못하고 6~7시가 되면 ‘밥 먹고 하자’며 저녁 식사 후 일이 늘어지는 일이 비일비재 했으나, 현재는 앞당긴 퇴근 시간에 저녁 시간을 자기 시간으로 쓸 수 있게 되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직원들도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다. 회사 역시 이후 퇴직률이 눈에 띄게 줄었고, 신입 및 경력 지원자들이 ‘같은 조건이면 35시간 근무하는 신세계’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등 얻은 것이 많았다.


박준모 신세계 EX(직원 경험·사내 문화) 팀장은 "도입 초반 (백화점) 점포에선 조를 나눠 오픈과 마감을 각각 맡는 방식이었으나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요구가 커 도입 후 의견 수렴을 통해 당직제로 수정하는 등 조율을 해나갔다"며 "안될 거라고 생각해 시도하지 않았으면 현재의 정착은 여전히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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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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