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튜버·정치인 ‘혐오표현’ 횡행
팩트 확인 없이 추측성 가짜뉴스 범람
열성지지자 ‘표’ 궁한 정치권이 악용
자정작용 없이 받아쓰는 언론도 문제
“흉기가 나무젓가락인가요?”
“재명이 지지자가 재명이 찌른거잖아.”
“책임은 윤석열에게 있다!”
“18cm 칼 안보여요. 조작이에요.”
지난 3일 본지 보도(“이재명 피습은 양극화·혐오 양산 정치가 부른 테러”) 댓글에서 ‘순공감’ 순위가 높았던 반응들이다. 2일 부산에서 발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범행 도구가 나무 젓가락이라거나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는 근거 없는 의혹을 언급한 것이다. 이 대표 피습 범행 도구는 ‘18cm 길이 흉기’라고 경찰이 확인됐고 피의자 배후나 범행 동기가 뚜렷히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추측성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온라인 공론장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낭설, 음모론, 가짜뉴스 횡행하는 유튜브
제1야당 대표의 정치테러 사건과 관련해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한 보수유튜브 채널은 “흉기도 피도 연출된 쇼”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지난 2일 서울대병원 브리핑이 취소된 것을 두고 “상처가 심하지 않아 병원이 브리핑을 취소했다”는 낭설이 온라인상에 떠돌고 있다.
구독자가 20만 명에 달하는 한 유튜버는 심지어 잔혹한 피습 장면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고 확대해, 30분 넘는 분량에 담아 “칼이 아니다”고 단정했다. 이같은 영상들은 유튜브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가짜뉴스로 수익을 올리려는 일부 정치 유튜브가 있다”라며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사이버레커’처럼 최대한 의혹을 끌어올린 뒤 교묘하게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는 식으로 활동한다”고 했다.
열성 지지자 '표' 궁한 정치권 , 분노·적의·증오·혐오·적대 조장
문제는 정치권 인사들도 혐오·증오·적대를 조장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이경 전 민주당 부대변인은 자신의 SNS에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재명 대표 피습)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다. 이 전 대변인은 이후 댓글에서 피의자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올리기도 했다.
이 대표 피습 건은 아니지만 지난해 민경우 민경우수학연구소 소장이 “노인들 빨리빨리 돌아가셔라”라고 한 발언도 심각한 ‘혐오표현’에 들어간다. 민 소장은 지난해 10월 유튜브 채널 ‘곽은경TV’에서 “지금 가장 최대의 비극은 노인네들이 너무 오래 산다는 것”이라며 “빨리빨리 돌아가셔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일로 민 소장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으로 내정했지만 공식 임명 하루만에 비대위원직을 사퇴했다.
전문가들은 열성지지자들과 이들의 표가 급한 공천후보자들이 합세해 혐오와 적의가 담긴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동수 정치평론가는 본지와 통화에서 “혐오 표현이나 가짜뉴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그런 말들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 선동하는 것이 공천과 선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면서 “공당이라면 구성원들이 왜곡된 사실을 퍼나르른 것이 공익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 평론가는 특히 “현재 각 정당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강성당원들의 표를 조직하는 것이 유리하다. 당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사건을 왜곡, 악용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정작용 없이 혐오 표현 받아쓰는 언론도 문제
왜곡된 공론장의 이슈들을 고스란히 ‘받아쓰기’하는 언론도 공범이라는 진단이다. 정치권에서 나온 혐오가 담긴 말들이 아무런 편집이나 자정 작용없이 보도되다 보니 자극적인 혐오표현이 범람하고, 음모론과 가짜뉴스 문제도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방송에 극우와 극좌를 표방하는 극단적인 패널들이 나오고, 유튜브는 가짜뉴스들이 범람한다. 정치인들은 극단적인 발언을 SNS에 올린다. 이를 언론이 고스란히 받아쓰면서 ‘타협과 상생’보다는 적의가 증폭되는 방식으로 공론장이 오염되고 있다”고 했다. 유권자가 알아야할 이유가 없는 ‘말싸움’만이 정치면 보도를 채우는 가운데 ‘따옴표 저널리즘’, ‘싸움 실황 중계’, ‘막말 받아쓰기’로 인해 정치 공론장이 혼탁해지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의 위협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반(反)지성주의로 봐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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