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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①붕괴하는 '거대한 카르텔'‥韓 부동산 PF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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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건설사-금융사로 전이' 부실 위험 분산 장치 부족
금융회사의 PF대출 자체 사업성 심사 평가능력 부족
증권사 등 부동산PF 대출 관련 과도한 수수료 책정도 문제

편집자주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신청 여파가 건설업계를 넘어 대한민국 금융권과 자본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의 결정적 원인은 과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때문이다. 수주 물량을 늘리려고 무리하게 PF 보증을 남발한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얼어붙자 사업이 지연되면서 원리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부동산 PF 부실이 현실화하면서 저축은행, 캐피탈, 증권사 등 2금융권뿐 아니라 1금융권까지 얼어붙었다. 13년 전 저축은행 사태 때는 주택사업에 편중된 중견 건설사와 저축은행의 문제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PF 부실 사태 여파는 더 광범위하다. 새마을금고, 캐피탈, 증권사, 저축은행 등의 2금융권이 부동산 PF 대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신탁사도 신용등급이 낮은 중견 건설사의 책임준공 보증의 조건으로 참여해 PF 대출 위험이 금융권 전반으로 번졌다. 도급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흔들리면서 부동산 경기 상승 시점에 수주와 PF 대출을 늘려놓은 중견 건설사의 연쇄도산이 우려된다. 잊을 만하면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부동산 PF 부실, 건설 및 금융·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과 재발 방지를 위한 건설적 대안을 찾아본다.
붕괴하는 '부동산 카르텔'‥기형 구조의 한국 부동산 PF

"지자체(지방자치단체) 네트워크를 가진 영세한 시행사가 땅값도 없이 계약금만 가지고 땅을 먼저 계약하고 나서 건설사를 찾아갑니다. 건설사가 보증을 서주면 브릿지론을 받을 수 있어요. 브릿지론은 증권사에서 주로 많이 내줍니다. 증권사는 이걸 그냥 들고 있는 게 아니라 2금융권 저축은행이나 신협, 새마을금고 등에 셀다운(재판매)합니다. 시행사는 브릿지론을 1년짜리를 만들어 놓고는 설계 등 사업계획을 확정해서 1금융권에서 대출을 진행합니다. 그걸로 브릿지론을 우선 갚고 집을 짓는 거죠. 시행사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야 분양이 잘되면 밑천도 없이 대박을 터트리지만, 경기가 나빠지니 그 책임을 누가 집니까. 시행사는 손실을 흡수할 능력이 없으니 보증을 선 건설사로 다 전이가 되는 것이죠. 중간에 눈먼 돈도 많아요. 부동산 신탁사들은 지급 보증을 서면서 가만히 앉아서 수십억 벌죠. 사업장이 100개면 앉아서 수천억 버는 겁니다. 증권사에서도 PF대출 한 번에 수수료를 수십억씩 떼가죠. 거대한 부동산 카르텔이 형성돼 있는 겁니다. 이제 그 돈 잔치의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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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은행장을 지낸 한 금융권 원로는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에 대해 '거대한 부동산 카르텔'이라고 지적했다. 빚으로 지은 집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 PF 부실은 영세한 시행사, 시공사(건설사) 간 과당경쟁, 제3의 위험 분산 장치 부족, 당국의 느슨한 모니터링이 빚어낸 구조적 실패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은 시행사와 시공사가 분리돼 있다. 사업의 주체인 시행사는 공사를 진행할 땅을 사고 무엇을 지을지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계와 분양까지 담당한다. 시공사는 시행사가 원하는 대로 공사를 진행하는 건설사업자다. 예를 들어 재건축을 위해 만든 조합은 시행사, 건물을 짓는 건설사는 시공사가 된다. 시행사와 시공사의 구분은 IMF 금융위기 때 등장했다. 이전에는 대형 건설사들이 공사를 진행할 곳의 땅을 직접 사고 건물을 지어 올리고 분양까지 담당했다. 그런데 토지매입 비용이 건설사들의 부채비율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토지매입은 물론 각종 인허가, 분양관리, 계약자 관리를 전담하는 시행사가 등장했다. 건설사들은 이를 통해 토지구입비용으로 인한 재무 상태 악화를 막고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대형 기업이 아닌 시행사들이 건설공사를 위해 수백 수천억원에 이르는 토지를 사들인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그래서 시공사인 대형 건설사들이 지급 보증을 통해 시행사가 토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한다.


부동산 PF 부실은 공사를 진행하는 시행사에 대해 건설사들이 지급보증을 과도하게 서면서 문제가 된 경우가 많다. 건설경기 악화로 사업이 부실해져 시행사가 빌린 대금을 시공사가 대신 갚아야 하는 경우가 무수히 발생한 것이다.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래에 들어올 분양 임대 수익금을 기초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기법이다. 착공 전 토지를 매입하는 등 초기 단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보통 브릿지론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시행사들은 저축은행,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에 높은 금리를 주고 돈을 빌리게 된다. 이렇게 빌린 돈으로 시행사가 땅을 사고 인허가를 받고, 시공사 선정 등의 후반 작업을 완료하면 1금융권에서 금리 낮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본 PF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기업들은 보통 금리가 높은 브릿지론을 먼저 상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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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국형 PF의 특징이자 약한 고리가 나타난다. 영세한 시행사들이 투기성 대출을 감행하고, 부동산 경기 과열기 사업장 잡기에 급급했던 건설사들의 과도한 지급보증책임을 진다. 그 중간에 한 번 위험을 끊어갈 수 있는 제3의 장치가 마련되지 못했다. 시행사-금융사-건설사는 경기 악화 시 연쇄적으로 부실 영향권에 들게 된다. 위험의 전이가 쉬운 구조다. 건설사들의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한 시행-시공 분리가 되려 건설사들을 더욱 위험한 구도에 몰아넣은 아이러니다.


우리나라 시행사들은 총사업비의 5~10%만 자기자본을 넣고, 나머지 모든 사업비(토지비와 공사비)를 전적으로 PF 대출과 분양대금으로 마련한다. 대다수 시행사 규모가 영세한 탓이다. 현재 부동산개발업체(시행사)는 자본금 3억원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다.


건설업계 한 전문가는 "건설시장 내 시공시장은 경쟁 포화 상태로 그동안 건설사들은 시행사가 사업장(땅)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일단 물고 봤다"며 "시행사들이 자본력이 약한 상태에서 시작한 위험이 그대로 시행사로 넘어오게 만들어진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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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파이낸싱에 프로젝트가 없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부동산 개발 사업의 주체가 상당한 자기 자본과 다양한 투자자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토지를 사고, 사업 인허가가 완료된 상태에서 PF 금융이 시작된다. 공사비와 기타 사업비만 PF 대출로 조달하면 된다. 각종 펀드나 리츠, 연기금, 개인 투자조합 등 다양한 자본 조달원이 발달해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시행사)도 대부분 대기업이어서 자금 조달이 쉽다.


건설업계 한 전문가는 "해외 시행사들은 대부분 대형사 위주지만 국내 시행사들은 땅만 매입할 뿐 사업을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며 "그래서 땅을 일단 확보해서 시공사에 도급을 맡긴 다음 실질적으로 시공사가 사업을 끌고 가게끔 하는 그런 구조로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부동산 PF 히스토리를 보면 처음에는 정부가 토지를 매입하고 민간에서 건설하는 민간 투자 사업 식으로 진행이 되다가 순수 민간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위험을 민간 참여자들이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구조로 변해 일종의 투기적인 금융의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은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들이 PF대출 심사를 할 때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사업성 판단 능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사업성을 기초로 판단하기보다는 건설사의 신용등급과 보증에 의존한다. 또 PF에 참여하는 타 기관 리스트를 보면서 대형 기관이 참여한다고 하면 해당 프로젝트 쏠림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프로젝트 그 자체보다는 얼마나 신용등급 높은 건설사가 보증을 서느냐, 누가 참여하느냐가 1금융권 대출의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신탁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PF 참여를 결정할 때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 정밀한 심사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은행을 포함해서 아직 전당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도 겉모습만 좀 달라졌을 뿐 '누가 참여했다, 어디 PF가 잘된다'고 하면 여전히 떼로 몰려다니는 후진적 행태는 변함이 없다"며 "금융기관 자체적으로 심사를 해서 지금처럼 불황이라도 사업성 있는 프로젝트는 대출을 해주고 호황이라도 수익성이 낮으면 거절해야 하는데 그런 판단 능력이 없고 그저 우르르 몰려다니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한계점에 달한 브릿지론‥1년 유예기간에도 자정작용 '기회' 놓쳐

과거 저금리 시대 부동산 호황을 타고 제대로 된 심사기준 없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PF대출은 고금리 장기화를 겪으며 한계점에 달했다.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21년 말 112조9000억원, 2022년 말 130조3000억원, 2023년 9월 말 134조3000억원 등으로 부풀었다. 같은 기간 부동산 PF 연체율은 0.37%, 1.19%, 2.42% 등으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1년 정도 유예기간을 주면서 사업자들이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도록 유도를 했지만,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개별 사업자들에게만 맡겨 놓은 탓에 제대로 된 부실 사업장 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평가다.


현재 PF 시장을 만기 연장 방식으로 계속 끌고 가기엔 리스크가 커졌다. 지난해에도 레고랜드 사태를 겪으면서 PF 관련 문제가 불거졌고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단계적 정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결국 현실화하진 못했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년 정도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시간을 줬는데 시행사, 개별 건설사에 맡겨놓으니 제대로 정리가 안 된 것"이라며 "다들 자기 사업은 '알토란' 같으니 가격을 낮춰 매각하지 못하고 계속 연장해서 들고 오다가 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태영을 필두로 조금 무리하게 진행된 사업의 경우에는 지금 이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신호탄으로 봐야 한다"며 "정부서도 계속 유동성을 퍼붓기보다는 일부 조정을 하도록 유도해서 손실을 털고 정확하게 재평가를 받아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경제 위기 막으려다 '눈덩이' 부실 ‥'보증서'는 양치기 소년

1금융권의 시각에선 좀 더 객관적 위기감이 느껴진다. 시중은행 PF 금융 담당자는 "브릿지론이 본 PF로 넘어오지 못하는 불일치 상태로 계속 있는데 정부에서 이게 터지면 안 되니까 계속 연장을 해주고 금리를 깎아주고 그러면서 1년이 지났다"며 "간신히 버티던 게 이제 진짜 터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논리 안 맞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막았지만 사실 1~2년 전부터 조금씩 미리 터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사업장이 부실화하면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막고 있지만, 이젠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이 관계자는 "대형사를 살리려다가 작은 회사들도 다 살아남았고 결국에는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형국"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PF라는 게 구조가 복잡해서 주석을 달아서 조건을 달리 잡으면 그 수치에서 빠지고 잠겨진 부실이 너무 많아 금융당국도 집계가 힘든 시장"이라며 "태영건설 터지고 나서 은행들도 건설사 익스포져(리스크에 노출된 금액)를 다시 분석하면서 이번 위기를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제는 보증서가 있어도 못 믿는다 생각하고 대출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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