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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신보다 돈이 많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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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말라비, 헤지펀드 열전

자본시장에서 헤지펀드만큼 비난받는 존재는 없다. 헤지펀드는 부자들의 자본을 모아 멀쩡한 정부와 시장을 교란한다는 지적을 듣는다. 국가 규제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온갖 꼼수와 편법으로 막대한 피해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있다. 진보 성향 정치인들은 늘 헤지펀드 때문에 국가 경제가 엉망이라며 강력한 규제를 예고한다. 투자하는 개인으로서도 공매도를 일삼는 헤지펀드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바스찬 말라비 미국외교협회(CFR) 선임 연구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서 ‘헤지펀드 열전’에서 막대한 수입을 기록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이들이 쌓은 부(富)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월가를 주름잡았던 금융사와 사모펀드 수장들도 헤지펀드 영웅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존 피어폰트 모건은 재산을 14억달러나 축적해 ‘주피터’로 불렸지만,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몇 년간의 트레이딩으로 신을 뛰어넘었다. 허술한 환율제도를 집요하게 공격한 사람도 있고, 지수를 빠르게 추종하거나 트레이딩에서 기회를 잡은 경우도 있다.


헤지펀드의 성공 스토리만 다루지 않는다. 헤지펀드 대가도 실수를 한다. 노벨상 수상자와 월가 슈퍼스타들 역시 뇌동매매를 하고 그릇된 판단을 해왔다. 심지어 합리적인 분석을 했음에도 시장 참여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대가로 남을 수 있었던 건 교훈을 얻고 틀렸음을 인정하는 자세 덕분이다. 투자기법을 바꾸고 상대방의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포트폴리오를 바꾸면서 전쟁 같은 금융시장에서 살아남았다.


단 헤지펀드 업계에도 변하지 않는 공통된 철학은 있다. 바로 ‘오류 찾아내기’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시장의 왜곡에 베팅한다. 여러 국가에서 외환위기를 일으킨 주범으로 꼽히는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이다. 사실 소로스는 멀쩡한 시스템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자본시장 순리를 거스르는 정치인과 반시장적인 제도를 겨냥했을 뿐이다. 영국 중앙은행이 파운드화 공매도에 무너진 원인도 소로스의 탐욕이 아니다. ‘유럽 단일통화 만들기’를 목표로 한 정치인들의 반시장 정책 탓이었다.

헤지펀드는 경제학자들이 수십년간 탄탄히 쌓아온 재무이론과도 맞섰다. 1960년대만 해도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늘 효율적’이라는 가설 아래 연구를 진행했다. 가격은 무작위적이고 예측할 수 없으며, 헤지펀드 부자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로 치부됐다. 헤지펀드가 20년간 ‘시장은 비효율적’이란 사실을 수익으로 증명한 뒤에야 경제학자들은 새 그래프와 이론을 부랴부랴 만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헤지펀드 열전의 주인공은 금융권 매니저들이 아니다. 바보같은 제도를 고집하는 국가, 국민 선동만 알고 시장을 모르는 정치인, 비현실적인 이론을 고집해온 학자들, 생각 없이 돈을 넣는 투자자야말로 숨겨진 주인공이다. 이들이 차곡차곡 만들어 온 자본시장의 허점은 헤지펀드가 있었기에 메워질 수 있었다. 물론 무시무시한 진통을 겪어야 했지만, 헤지펀드라는 독한 약이 없었다면 경제가 사경을 헤맸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헤지펀드가 비밀에 싸여있고, 과도한 위험을 추구하고, 대형 사고를 친다고 생각한다. 책은 헤지펀드의 실태를 낱낱이 드러낸다. 업계의 거물들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안전성을 걱정하며, 효율성을 확보해나가는지 알려준다. 건강한 국가 경제와 탄탄한 자본시장은 적절한 규제를 받는 헤지펀드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헤지펀드 열전|세바스찬 말라비 지음|김규진·김지욱 옮김|에프엔미디|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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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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