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들이 처벌을 받은 이후에도 다시 사기를 저지르는 범죄의 악순환이 계속되며 피해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형량은 낮고, 범죄수익금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이용해 처벌받은 후에도 사기를 저질러 또 다른 피해자를 낳고 있다.
사기 혐의 등으로 검찰 송치가 결정된 전청조 씨가 10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 나와 동부지검으로 압송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입건된 사기 범죄자 16만9528명 가운데 전과자는 7만1030명(41.9%)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과 9범 이상이 2만7077명으로 초범(2만6698명)보다 많았다. 전과자는 '동종 전과'(같은 범죄 전과자)와 '이종 전과'(다른 범죄 전과자)로 나뉘는데, 사기 범죄 전과자 중 과거에 사기 전력이 있는 동종 범죄 전과자는 3만3063명으로 파악됐다.
사기꾼들은 처벌 이후에도 계속 사기 행각을 벌인다. 대표적 사례가 전청조다. 전청조는 과거에도 결혼 빙자 사기행각을 벌이는 등 전과 10범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직 국가대표 펜싱선수 남현희에게 자신이 재벌 출신이라고 속여 접근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남성에게 혼인빙자 사기로 고소당했다. 아울러 지난해 3월 지인들에게 자신이 시한부 환자라 병원비가 필요하다며 금전을 편취하는 등 계속해서 사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청조는 지난 1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구속 송치됐다. 앞서 2021년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뒤 돈을 내지 않은 60대 A씨가 상습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A씨는 같은 상습사기죄로 6개월을 복역하고 나오자마자 범행을 저질렀는데, 동종 전과만 48범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기 범죄는 평범한 일상을 뒤흔든다. 유모씨(70·여)는 지난해 초 지인을 통해 자칭 '고수익 투자업체'를 알게 됐다. 이 업체는 땅이나 금에 투자해서 올린 수익으로 3개월 만에 10%의 이익을 얻게 해준다고 했다. 남편과 사별한 뒤 노후를 걱정하던 유씨는 이 업체에 7000만원을 투자했다. 약속한 배당금이 잘 들어오자 투자금을 5억원까지 늘렸다. 그러나 지난해 9월부터 배당금이 막혔고,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유씨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투자업체 운영자들을 고소했으나,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유씨는 함께 사기를 당한 지인에게 이들이 사기 범죄 집행유예 기간 중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을 들었다. 유씨는 "믿은 내가 잘못이지만, 사기 전과자들이 똑같은 사기를 반복해도 방치되는 사회 현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사기꾼들이 범행을 반복하며 활개치는 가장 큰 이유는 처벌이 약하다는 점이다.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및 공갈죄로 1심이 선고된 4만796명 가운데 30%는 집행유예(9405명)와 벌금형(3040명)을 선고받았다. 2만5000여명은 유기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형량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사기 피해액이 1억원 미만일 경우 징역 6개월에서 1년6개월 사이의 처벌을 받게 된다. 피해액이 300억원 이상이고 범죄수익을 의도적으로 은닉하거나 재판 절차에서 법원을 기망하는 등 가중요소가 포함돼도 양형기준상 징역은 최장 13년까지다.
범죄수익 환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사기꾼이 다시 사기를 저지르는 동기가 된다. 재산 탕진 등을 이유로 피해 변제도 하지 않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약 5년간 발생한 사기 피해 금액은 약 121조원이다. 하지만 회수한 금액은 6조5000억원으로 5.3% 수준에 그친다. 사기 피해를 복구하려면 형사재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민사재판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이미 사기꾼들은 재산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하거나 은닉해 실질적인 피해 복구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와 함께 사기 범죄자에 무거운 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등 범죄 의지를 꺾을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형량이 가벼우니 사기꾼들이 재판받는 상황 자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사기 피해로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피해자의 생명까지 위협하기에 반드시 사기 범죄 근절을 위해 형량을 올리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천문학적 배상을 명령하는 해외와 달리 한국의 사기범들은 부담이 없어 다시 사기 행각을 벌인다"며 "사기 범죄는 계획범죄기에 형량을 높이고 천문학적 단위로 신속하게 배상을 명령하는 등 범죄 의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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