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스틴 카스텐스 BIS 사무총장 방한
'디지털 원화'에 대해 "미래 통화시스템"
빅브라더 우려에는 '걱정 없다'고 설명
"CBDC 도입되더라도 현금은 존재 해야"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BIS 사무총장 초청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아구스틴 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이 23일 한국은행이 연구개발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디지털 원(Digital Won)'이라고 표현하면서 "미래 통화시스템의 비전과 잘 부합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금융당국과 CBDC 실거래 실험을 적극 추진 중인 한은은 카스텐스 사무총장이 언급한 '디지털 원'에 대한 상표 등록을 마친 상황이다.
카스텐스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별관 컨퍼런스홀에서 'CBDC와 미래 통화 시스템'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한은의 CBDC 프로젝트에 대해 "(디지털 원화) 프로젝트 설계 구조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화폐 원장과 상호 작용하는 연계 플랫폼이 (구조에) 포함돼 플랫폼이 시장 발달에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7년 BIS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그동안 여러 국제회의에서 CBDC 사업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은을 적극 지지하는 의견을 표명해왔다. 카스텐스 사무총장의 방한은 2018년 11월 이후 5년 만으로 이번이 두 번째다. BIS가 선진국 중앙은행이 주축이 돼 움직이는 것을 고려하면 이번 사무총장 방한은 그만큼 한국의 CBDC 프로젝트를 주시하고 있으며, 양측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앞서 한은은 지난달 BIS와 함께 'CBDC 활용성 테스트'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BIS가 CBDC 파일럿 테스트를 공동으로 하는 것도 전세계에서 한국이 처음이다.
카스텐스 사무총장은 "한은의 CBDC 프로젝트는 미래 통화시스템의 비전과 잘 부합한다"며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기관용 CBDC가 있고, 규제를 적용받는 은행 시스템이 토큰화된 예금을 통해 공통 원장에 참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화폐인 CBDC는 활용 범위와 사용 주체에 따라 범용(retail)과 기관용(wholesale)으로 나뉘는데, 이번 테스트는 기관용 CBDC에 집중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 초청 세미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원본보기 아이콘카스텐스 사무총장이 언급한 미래 통화시스템의 핵심은 '통합원장'과 '토큰화'다. 통합원장은 금융시장과 금융서비스와 관련된 각종 거래를 프로그래밍 가능한 공통 플랫폼으로 묶은 것으로, 실시간 즉시 결제나 모든 자산에 대한 원자적 결제 등을 가능하게 한다. 토큰화는 돈과 자산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원장에 디지털 형태로 기록하는 것으로, 통합원장을 작동하게 하는 근간이다.
그는 "통화시스템 측면에서 '디지털 원'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술적으로 개선됐을 뿐 익숙한 느낌을 주지만, 프로젝트 아키텍처의 다른 측면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며 "여기에는 화폐 원장과 상호 작용하는 연계 플랫폼이 포함되는데, 다양한 활용 사례의 적용이 가능해 플랫폼이 시장 발달에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디지털 원' 프로젝트의 설계방안과 기술적 정교함 외에도 수행 과정에서의 협력관계에 의미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는 한은을 비롯해 국내 주요 규제 기관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함께 참여하고 있고, 관련된 법적 문제도 이미 해결방안이 마련됐거나 모색 중"이라며 "통합원장과 같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협력적 접근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카스텐스 사무총장은 미래 금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토큰화된 중앙은행 화폐, 즉 기관용 CBDC와 토큰화된 상업은행 예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개인은 실제 기관용 CBDC가 도입되더라도 여전히 은행 계좌로 저축이나 거래를 하게 돼 큰 차이점을 못 느낄 수 있으나, 제3의 중개 기관을 통해 거래되면서 발생하는 시간 지연이 사라지고 추가 비용 없이 주식, 금융자산을 살 수 있는 등 편의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화폐 시스템을 토큰화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일상적인 금융거래에 적용될 새로운 기술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더 과감하고 더 넓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며 "특히 토큰화된 화폐를 넘어 정부채, 주식 또는 부동산 등기부와 같은 다른 금융·실물 자산에 대한 청구권을 토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 컨퍼런스홀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미래 통화 시스템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원본보기 아이콘한편 한은은 이번 카스텐스 사무총장 방한을 계기로 CBDC 활용성 테스트에 더욱 속도를 낼 예정이다. 한은은 지난 8월 '디지털 원' 등 CBDC 명칭 후보들에 대한 상표 등록까지 마쳤으며, 내년 말에는 은행 등 금융기관뿐 아니라 일반 금융소비자도 실험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카스텐스 사무총장과 가진 대담에서 "디지털 원이라고 명칭을 정해주셨다"며 "좋은 이름을 오래 찾고 있었는데 픽스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카스텐스 사무총장은 '일반인 입장에서 CBDC가 중요한 이유'를 묻는 이 총재 질문에 "중앙은행은 사회에 디지털 형태로 현금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현금은 아주 오래된 기술을 사용한다"며 "하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기관용 CBDC는 기술적으로도 많은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CBDC를 발행할 경우 중앙은행이 개인 금융 거래 내역 등을 샅샅이 알 수 있게 된다는 우려에 대해선 "중앙은행은 그런 정보를 분석하는 데 관심이 없다"며 "중앙은행은 300년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그 데이터를 이용한 적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화폐의 표현을 바꾼다고 해서 중앙은행이 (입장을) 바꿀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카스텐스 사무총장은 CBDC가 도입되더라도 현금은 여전히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CBDC를 개발하더라도 현금을 몰아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현금을 다루는 데 비용이 많이 들지만 현금은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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