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발생 62건 중 30건 고시원
"어디서든 나오는 빈대, 방제 격차가 문제"
최근 서울에서 확인된 빈대의 절반 이상이 고시원·쪽방촌 등 저소득층 거주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해충 방제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 거주지에서 빈대가 집중 발생함에 따라, 보건당국이 이 지역에 대한 집중 방역을 하지 않으면 빈대가 서울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이달 16일까지 서울에서 62건의 빈대 발생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고시원·쪽방촌에서 33건(53.2%)이 나왔다. 고시원 30건, 쪽방촌 3건, 가정집 20건, 목욕탕 2건, 숙박시설 1건, 기숙사 1건, 기타 5건 등이었다. 고시원과 쪽방촌은 주거 여건이 좋지 않아 저소득층 취약계층이 모여 산다.
고시원·쪽방촌 거주자들은 빈대 방제를 할 능력이 없다고 호소한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김모씨(63·남)의 손에는 살충제가 들려있었다. 김씨는 "이틀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빈대에 물린 것 같다"며 "방제업체를 부를 돈은 없고 살충제를 사서 가져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살충제는 효과가 없다고 하지만 방제업체를 부를 돈이 없어서 우선 장판과 이불 주변에 살충제를 뿌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 강모씨(69·남)는 "이 근처 어딘가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며 "우리집에서 나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유행하는 빈대는 해외에서 유입된 만큼 저소득층 거주지의 위생 문제 자체와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빈대 방제 비용이 다른 해충보다 훨씬 많이 든다는 것이다. 민간 방제업체의 원룸 기준 빈대 방역 비용은 1회에 10만~20만원 수준이다. 빈대가 한 번 나오면 2~3회의 방역이 필요해 실질적으로 30만~50만원까지 든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안전환경학과 교수는 "현재 퍼지는 빈대는 열대성 반날개빈대"라며 "고시원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묵고 가면서 빈대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빈대는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아 어디서든 나올 수는 있지만, 경제력이 있으면 빈대가 발생한 가구를 버리는 등 신속하게 방제할 수 있는데 비해 쪽방촌·고시원은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는 최근 쪽방촌·고시원 빈대 예방·방제 강화를 위한 예산 5억원을 긴급 교부했다. 또 쪽방촌·고시원에서 빈대 발생 여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자율 점검표를 제작·배부하고 빈대 발생 시 방제를 지원하는 한편 이후에도 신고센터를 통해 관리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가라앉음에 따라 내외국인 출입국이 늘면서 해외 유입 빈대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지자체의 방역·방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 교수는 "쪽방촌이나 고시원이 많은 지자체에는 방역 지원금을 많이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방역당국이 빠르게 개입하지 않으면 빈대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 있는 만큼 예산 제약 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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