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1920년대부터 1970년대에 국내에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하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을 과천관에서 개최한다.
점과 선, 원과 사각형 등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회화의 한 경향이다. 서구에서는 몬드리안, 칸딘스키, 말레비치와 같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각광 받았고, 20세기 내내 현대미술의 주요한 경향으로 대두됐다. 국내에서도 기하학적 추상은 1920-30년대 근대기에 등장해 1960-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등 한국 미술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각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기하학적 추상미술은 장식적인 미술 혹은 한국적이지는 않은 추상으로 인식되며 앵포르멜이나 단색화와 같은 다른 추상미술 경향 대비 주변적 사조로 여겨졌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지닌 독자성을 밝히고 숨은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인의 작품 150여 점을 통해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역사를 조망한다. 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건축과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하고,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연동되면서 한국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시대별 주요 양상을 따라 전시는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전시 기간 중 ‘전문가 강연 및 토론’과 ‘학예사 대담’ 등 전시 연계프로그램이 개최된다.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디자인'을 주제로 미술사,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학술적 의의를 심층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4년 5월 19일까지,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토비 지글러 개인전 '파괴된 우상 Broken images' = PKM 갤러리는 영국의 현대 미술가 토비 지글러의 개인전 '파괴된 우상 Broken images'을 진행한다. 2019년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작가는 고전 예술과 현대 기술을 가로지르며 오브제, 이미지, 그리고 공간의 관계성을 유연하게 탐구한 회화 신작 8점을 공개한다.
작가는 고전 예술의 조형 요소와 의미를 현대의 기법과 재료로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원본이자 데이터라는 양면성을 띠게 된 회화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과 속도에 집중해 왔다. 그는 바탕이 될 이미지를 3차원으로 모델링하여 기존의 조형적 특징을 비워낸 후, 젯소를 여러 차례 칠하고 사포질한 캔버스에 매끄럽게 프린팅한다. 이처럼 프린트된 격자무늬 레이어의 안팎을 우연하고도 유기적인 붓질로 오가면서 회화적인 개입을 하고, 조형 요소들을 다시금 조합해 나간다.
최근에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알루미늄을 지지체로 삼는 대신 직물 캔버스로 회귀해 이성과 직관, 구상과 추상,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특유의 작업 방식에 더 깊숙이 천착함과 동시에, 오리지널리티의 경계가 무너진 다성(多性)의 풍경을 관람객 앞에 새롭게 펼쳐 보인다.
전시를 통해 작가는 디지털 기술이 지닐 수 있는 특성인 비현실성(unreality)을 이용해 고전 이미지의 회화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들어낸다. 전시 명이자 이번 개인전의 주요 작품인 '파괴된 우상'은 미국계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1922)의 한 구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문명이 야기한 전쟁으로 인해 메마르고 황폐해진 인간상을 표현한 동시에 구원의 소망을 시사한다. 엘리엇의 불규칙하고 파편화된 음률을 따라서, 작가는 혼종적으로 재구성된 기하학적인 공간 속에 환영처럼 떠도는 파괴된 우상들이 지닐 수 있는 또 다른 아우라를 현재의 성배로써 제시한다. 전시는 12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 갤러리.
▲한지민 개인전 '야생 정원 Wild Garden' = 페이지룸8은 ‘모나드 판화(Monad Printmaking)’ 작가 4인을 조명하는 기획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지민 개인전 '야생 정원 Wild Garden'을 선보인다. 섬세한 선이 이루는 인체 형상이 탁월한 리노컷 기법을 활용하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무엇으로 나눌 수 없는 궁극의 실체를 뜻하는 철학 용어 ‘모나드(monad)’처럼 타 장르에 귀속되지 않은 채, 판화를 온전한 하나의 시각 예술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작품은 작가 주변 환경에서 수집한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도심 어느 곳에서나 출몰하는 길고양이들, 바닥을 쪼고 있거나 찻길에 등장하며 사람들 간에 원하지 않는 간극을 좁히는 비둘기. 찻길과 인도, 길과 건물을 구획하는 수많은 펜스 뒤로 후미진 곳에 모여서 살아가는 이름 모를 잡초까지. 작가는 도시라는 자연에 강인하게 단련된 거리의 동·식물에 주체권을 건넨다.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도시라는 ‘인공 자연’은 그들에게 ‘야생 정원’이 된다. 이 이중적이고 모호한 경계의 세계에서 작가가 ‘아름답다’라고 느낀 일상의 장면은 어떤 생동감으로 다가온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적/감각적 취향에 따라 취사 선택된 이미지로 다가온다.
리노컷은 볼록 판화 기법 중 가장 나중에 나온 판법으로 간결한 표현에 적합한 판법이다. 그래서 섬세한 표현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리노컷을 하는 이유로 "조각도를 사용하여 아주 가는 선의 ‘칼 드로잉’을 할 수 있고 판을 오릴 수 있으며 무엇보다 판을 제작하는 과정에 흥미가 있을 뿐 아니라 표현되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힘에 대한 균형감을 유지하며 이어가는 시선은 작가가 제작하는 리노컷 작품의 테마가 되는 시선과도 연결된다.
까맣게 먹을 바른 리놀륨 판을 3번에 걸쳐 파내고 나면 마치 밀폐된 생태계(terrarium)처럼 판은 대지이자 정원이 된다. 그리고 현실과 끊임없이 연쇄를 일으키고 지속 가능한 이 환경에 초대할 주인공을 기다린다. 인공 도시에서는 비닐을 뒤집어쓴 비둘기에 불과하지만, 야생 정원에서는 화려한 차림의 영물이 될 수 있다. 거울로 투영하듯 사실주의에 기반한 작가의 이미지들은 다시 종이와 맞물린 채 압력을 가하며 반전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전시는 12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로 페이지룸8.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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