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까지 금지…앞선 3차례와 달라 '정치 영역 변질 비난'
신중했던 금융위 결국 백기…MSCI 숙원 물거품 등 부작용 우려
불법 공매도 엄정 처벌…제도 실효적 개선 등 향후 과제 이목 집중
국내 증시 역사상 네번째로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당시 공매도가 한시적으로 금지됐다. 이후 2021년 5월부터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 구성 종목에 한해 공매도가 다시 허용됐지만, 나머지 중소형주는 현재까지 공매도 금지가 계속 적용되고 있다. 정부가 5일 오후 임시금융위원회를 열고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조치'안을 의결함에 따라 6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해 공매도를 전면 금지된다. 코스피와 코스닥, 코넥스 전 종목에 해당한다. 다만 이전의 공매도 전면 금지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 등의 차입공매도는 허용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런 내용의 공매도 전면 금지안을 발표했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팔았다가 주가가 내려가면 싸게 사서 갚아 이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를 마치고 공매도 제도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외국 자본 이탈 가능성 등 부작용 우려
시장에서는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공매도가 증시를 하락시킨다는 주장이 검증되지 않았고 공매도의 순기능이 많아서다. 공매도는 증권시장에서 주가의 거품을 빼고 주가 변동성을 줄이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올해 4월 차액결제거래(CFD) 사태 당시 라덕연 일당이 주가를 조작한 종목 대부분이 공매도가 금지된 종목이었다. 또 공매도가 재개됐을 때 그동안 조정받지 못한 종목들이 오히려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김준석·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매도 금지가 (주식시장의) 가격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변동성을 확대했다"라며 "시장 거래는 위축시켰다"라고 분석했다.
해외자본 이탈 가능성도 부담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가 해외 기관의 반발이나 글로벌 지수 산출기관의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무엇보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온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MSCI는 그동안 선진국지수 편입 요건으로 공매도 전면 재개를 요구해왔다. 사실상 내년에도 국내 증시의 선진 지수 편입은 물거품이 됐다.
여권 압박에 백기…정치 영역 비난 불가피
앞서 금지한 3번의 조치와 달리 현재의 시장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여권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이뤄졌다는 시각이 짙어서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제180조제3항은 공매도 금지를 결정함에 있어 시장 안정과 공정한 가격형성을 저해하는지 여부를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최근에 시장이 불안해 이 같은 특단의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까지 여겨지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 신뢰 회복'이라는 국내 이슈를 전면에 내건 것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고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 둔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무력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증대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해외 주요 증시 대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는 등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의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됨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형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가 적발됐으며, 추가 불법 정황도 발견돼 조사가 진행중이다.
그럼에도 사실상 공매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이며 공매도 금지를 풀지 않을 경우 한국 증시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란 금융위 입장이 급선회했다는 점에서 일관성 없는 정책에 비난이 쏠리고 있다. 자본시장 접근성을 개선하는 정책들을 잇따라 내왔는데 정책 신뢰성이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결국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 표심을 의식한 여권의 압박에 금융위가 기존의 논리와 입장에서 급선회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는 막판까지도 공매도 금지에 대해 신중론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당이 총선용 의제로 '김포 서울 편입'에 이어 '공매도 한시적 금지'를 밀어붙이면서 결국 백기를 든 것으로 풀이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국회 정무위 종합감사에서 "공매도를 3개월 내지 6개월 정도 아예 중단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발언한 데 이어 권성동 의원이 이달 1일 페이스북에 한시적 공매도 금지 여론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국민의힘 간사 송언석 의원이 같은 당 원내대변인인 장동혁 의원에게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불법 공매도에 따른 여론 악화로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큰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금감원은 최근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BNP파리바 등의 수백억원대 불법 공매도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고, 시장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공매도 시스템 전면 개편 추진은 과제
금융위는 일단 공매도를 전면 중단하고, 공매도와 관련된 제도를 재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금번 공매도 금지 기간을 '불법 공매도 근절'의 원점으로 삼고, 유관기관과 함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전향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해 재개 이후에는 공매도로 인한 불공정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브리핑에서 기관과 개인 간 '기울어진 운동장'의 근본적인 해소를 추진하고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금융위는 이후 시장 동향 등을 고려해 상반기 이후 공매도 재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한시적 금지 기간인 내년 상반기 말까지 시장이 신뢰하고 인정할 만한 공정한 공매도 제도를 내놓아야 한다는 점이 금융위의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우선 개인과 기관 간 대주 상환기간, 담보비율 등의 차이로 인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판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차입 공매도와 관련해 개인 투자자의 상환기관은 90일이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제한이 없다. 담보비율 역시 개인은 120%로, 외국인과 기관에 비해 높다.
정부는 또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정치권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실시간 차단 시스템 구축에 대해서도 대안을 검토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논의해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최근 글로벌 IB의 관행화된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를 처음 적발한 것을 계기로 글로벌 IB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추가적인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될 경우 엄정 제재, 적극적인 형사고발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불법 공매도 전수조사에도 향후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불법 공매도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과징금과 형사처벌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정 처벌할 것"이라며 "글로벌 IB들의 무차입 공매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자체 시스템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또 공매도 주문을 수탁하는 국내 증권사에 대해서도 법규준수 및 운영상의 문제점이 없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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