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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다이어리]굿바이, 챈들러 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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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뉴욕다이어리]굿바이, 챈들러 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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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친구를 잃은 날(The one where we all lost a friend)."


미국 뉴욕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의 한 건물 앞에 꽃다발과 팬레터가 쌓이기 시작한 건 지난달 29일(현지시간)부터다. 전날 밤 배우 매튜 페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들은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쏟아진 비와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자 하는 팬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하루 뒤인 30일 오후, 직접 찾은 건물 앞 사거리에는 이미 90명가량의 팬들이 서있었다. 빌딩 앞 구석 한켠에는 페리에게 메시지를 남기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하얀 보드는 이미 빼곡하게 각국 언어로 쓴 글들로 가득했다. ‘내 친구가 돼 줘서 고마워’, ‘내 어린 시절과 함께 해줘서 고마워’, ‘당신을 영원히 그리워할 거야’. 뉴욕 퀸스에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파커 씨는 “이런 기분을 느낄 줄 몰랐다. 오랜 친구를 잃은 것만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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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이 건물 앞에는 10여명의 사람이 서성이곤 한다. ‘미 역사상 가장 흥행한 시트콤’으로 평가되는 ‘프렌즈’의 배경으로 설정돼 이른바 ‘프렌즈 아파트먼트’로 불리는 곳이다. 물론 외관으로만 종종 등장할 뿐, 실제 촬영은 LA에 위치한 실내 세트장에서 이뤄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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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0시즌 236회에 걸쳐 방영된 시트콤 프렌즈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1990년대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방영 당시 미국 내 시청자는 매주 평균 2500만명을 웃돌았다. 2004년 마지막 에피소드는 5250만명이 시청하며 2000년대 가장 많이 본 TV 에피소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마지막 회에 삽입된 30초 광고의 단가는 무려 200만달러였다. 그리고 그 열풍은 바다 건너 한국에도 와닿았다. 필자 역시 학창 시절부터 영어 공부라는 명목으로 수십번 이상 다시 보기를 반복한 이른바 ‘프렌즈 세대’다. 종영된 지 20년이 가깝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프렌즈를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곤 한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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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가 연기한 챈들러 빙은 매년 프렌즈 내 캐릭터 인기순위에서 늘 상위를 차지했던 인물이다. 지난달 랭커닷컴이 공개한 설문조사에서도 챈들러는 6명 중 1위를 기록했다. 불편할 때면 쓸데없는 농담을 하고, 비꼬는 말을 잘하고, 조언은 잘 못 하는 인물. 인간관계, 특히 이성 관계를 극도로 어려워하는 챈들러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페리는 약 1년 전 공개한 회고록에서 챈들러 역에 대해 "마치 누군가가 1년간 나를 따라다니며 내 농담을 훔치고, 내 버릇을 따라 하고, 세상에 지쳤지만 재치 있는 인생관을 복사한 것 같았다"면서 "나는 챈들러였다"고 썼다. 그런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 것은 챈들러 역할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줬던 시기, 배우 자신은 제트스키 사고 이후 복용한 진통제로 시작된 약물 중독과 치료로 어두운 순간들을 보냈음이 이후 알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페리의 죽음 후 많은 이들은 다시 프렌즈를 보며 그를 추억하고 있다. 미국 내 케이블 및 지역방송에서도 연일 프렌즈를 방영 중이다.


'왜 모두들 챈들러를 좋아하냐'는 몇해전 온라인 게시글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아래와 같다. "나 역시 서툴고, 절망하고, 사랑이 절실하기 때문." 서툴고, 절망하고, 절실했던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위안과 웃음을 얻었다. 필자의 2030을 함께 했던 또 한명의 친구에게, 이곳 뉴욕에서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굿바이 챈들러 빙. 그리고 배우 매튜 페리가 그곳에선 편안하길.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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