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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잇수다]죽어가는 소도시 살린 만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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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만 명의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는 과거 수산도시로 번성한 지역이었으나, 산업 쇠퇴와 인구감소로 지역 경제가 고사할 위기에 내몰렸다. 1980년대에는 인구가 4만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으나, 거품경제가 꺼지고 장기침체가 시작되자 사카이미나토는 손쓸 새 없이 쇠락의 순간을 마주해야 했다.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에 조성된 요괴마을. [사진제공 = 내일투어]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에 조성된 요괴마을. [사진제공 = 내일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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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시청 문화 담당 공무원 구로메 도모노리는 관광자원 개발 아이디어를 통해 이 지역이 고향인 작가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 속 요괴 동상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부정적 이미지의 요괴 동상이 세워지면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밤에 무서워서 길을 다니겠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구로메는 지역 주민들 한 명 한 명을 찾아 직접 설득에 나섰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한 할머니가 집 앞에 요괴 동상 설치를 허락한 것을 시작으로 마음이 움직인 주민들의 허락에 1993년 총 23개의 요괴 동상이 세워졌다. 마을 곳곳에 들어선 기괴한 동상들은 주민 또는 외지인에 의해 종종 파손되거나 사라졌고, 이 소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궁금증에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 설치된 요괴 동상들 중 주인공 기타로. [사진제공 = MIZUKI Productions]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 설치된 요괴 동상들 중 주인공 기타로. [사진제공 = MIZUKI Produ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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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지역 소도시에 요괴 동상을 보러 인파가 몰리자 주민들은 요괴가 관광자원이고, 곧 지역을 명소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모금과 후원을 통해 요괴 동상을 늘려나가는 한편 미즈키 작가의 동의를 얻어 캐릭터 저작권을 무상으로 양도받았다. 작가는 자신의 요괴 캐릭터들이 고향을 살리는 것에 감동해 거액의 기부금도 쾌척했다. 현재 사카이미나토에는 총 153개의 요괴 동상이 설치됐고, 지역 상점가는 미즈키 시게루 거리로 변모했다. 돗토리현은 아예 인근 소재 요나고 국제공항의 이름을 만화 주인공 기타로의 이름을 넣어 요나고 기타로 공항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요괴마을로 거듭난 사카이미나토는 매년 200~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경북 울진군 매화면 이현세만화거리에 그려진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들. [사진제공 = 울진군]

경북 울진군 매화면 이현세만화거리에 그려진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들. [사진제공 = 울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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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매화면은 지명처럼 남수산 아래 매화꽃이 만개하던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기후와 지역 여건상 매화나무는 점차 줄어들었고, 젊어서 대처로 나간 인구 또한 회복되지 않으면서 매화마을 역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구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황춘섭 매화1리 이장은 이러다 고향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이곳 출신의 이현세 작가의 만화를 벽화로 옮겨 관광 자원화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황 이장과 주민들은 이 작가의 일가친척을 수소문해 서울로 찾아가 직접 작가를 설득한 끝에 이현세만화거리를 조성했다.

작가의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남벌’, ‘며느리밥풀꽃’, ‘만화 삼국지’ 등 그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400컷의 그림이 1km의 담장을 가득 채웠다. 열차를 개조한 남벌열차카페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고요했던 시골 마을은 이 작가 작품에 향수를 가진 세대부터 레트로한 취향의 젊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차츰 이어지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인구절벽이 매년 가속화되며 지방소멸 위기가 대두되는 가운데, 지방 소도시를 살리는 콘텐츠로서의 만화의 힘은 날로 커지는 웹툰의 영향력에 힘입어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편집자주예잇수다(藝It수다)는 예술에 대한 수다의 줄임말로 음악·미술·공연 등 예술 전반의 이슈와 트렌드를 주제로 한 칼럼입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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