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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일주문에 깃든 스님의 창의력과 유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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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흔히 사찰은 '숲속의 박물관'이라 불린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불상과 불화, 전각 등을 품어냈기 때문이다. 다만 사찰은 그 자체로 역사 속의 보물인 경우가 많다. 절 마당의 돌기둥, 지붕 위 오리 조각, 불상 앞에 놓인 탁자, 계단, 석축은 역사적 맥락과 상징적 의미, 조상들의 지혜와 염원을 담고 있다. 저자는 암벽을 위에 새기고, 바위를 다듬어 만든 사찰 석조물과 마애불, 석탑, 석등, 승탑, 노주석, 당간지주 등에 관한 정보를 전한다. 해우소, 처마 밑에 숨겨진 항아리, 용마루에 앉아 있는 오리 등의 사연도 다룬다.

[책 한 모금]일주문에 깃든 스님의 창의력과 유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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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흩어져 있는 마애불을 답사하다 보면 불교 이전부터 전통적 기도터로 쓰였던 바위 신단에 마애불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근처에는 샘이나 계곡이 있고, 그 분위기 자체도 심상치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결국 오랫동안 한민족의 전통 신단으로 쓰였던 곳에 불교의 마애불이 나타나고 암자가 들어서면서 불교 사찰로 변모했다는 뜻이다. 이렇듯 마애불이 있는 곳에서는 불교 이전의 역사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한다. - p.25


서라벌 왕경(王京)의 오악 중 서악(西岳)이었던 선도산의 산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이다. 선도성모는 중국 황실의 딸로 해동으로 건너와 이 산의 산신으로 좌정했고,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라는 설화가 있다.

법흥왕 때 불교가 공인된 이후 선도성모설화는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다. 선도성모도 불교를 좋아해 안흥사 비구니 지혜(智慧)의 불사에 황금 10근을 시주하며 부처님과 함께 오악의 신들도 잘 섬겨 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하니 민간의 전통 신앙이 불교 신앙과 다툼 없이 함께 어울린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삼국유사』 ‘선도성모수희불사’ 조에 실려 있다. - p.52

충주 창동리 마애불은 아예 강물에 띄운 배 위에서 바라보아야 잘 보이기 때문에 뱃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수운의 안전을 위하여 조성했던 불상으로 보고 있다. 충주에서 여주까지도 많은 여울이 있어 뱃길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뗏목은 여름 강 수위가 높아지면 띄우는 것이지만 자갈이나 퇴적물이 쌓여 얕아진 여울은 항상 조심해야만 한다. - p.68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면서 일본불교가 침투하기 시작해 차츰 왜색불교가 자리 잡게 된다. 조선시대 말까지 겨우 이어지던 전통적 마애불 조성 불사도 현저히 줄어든 대신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은 마애불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유적이 목포 유달산에 남아 있다. - p.83~84


오랜 과거 무불상시대에는 존귀하신 부처님을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서 부처님 발자국이나 깨달음을 이루신 보리수나무, 그리고 연꽃, 법륜(法輪) 등을 조각해 부처님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신앙물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불탑이었다. - p.93~94

백제는 당시 세계적인 목탑 조성 기술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백제의 장인들은 다른 나라에 파견되거나 초청되어 탑을 만들었다. 신라가 선덕여왕 14년(645)에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울 때도 기술 총책임자는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였다. 일본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 오층목탑은 백제의 장인 세 명이 건너가서 593년에 완성한 탑이다. 비록 태평양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황룡사 구층목탑보다 50여 년 빨리 세워진 목탑이다. 이보다 조금 늦은 607년에 건축된 교토 호류지[法隆寺] 오층목탑도 또한 백제의 영향을 받은 건물로, 발굴 조사 결과 부여 군수리 절터와 같은 백제식 사찰이었음이 밝혀졌다. - p.95


백제인들은 돌을 깎아 목탑 모양대로 탑을 만들었다. 기본 모델이 목탑이었기에 그 모습을 돌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이 석탑이 바로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이다. 백제 무왕 40년(639)에 세워진 이 석탑을 뜯어 보면 목조 건물 양식을 곳곳에 갖추고 있다. - p.97


불국사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기단부 주위에는 연꽃을 조각한 둥근 돌을 여덟 곳에 배치하고 석재로 연결하여 탑의 구역을 나타냈다. 이를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라 하는데 여덟 보살이 앉는 자리라거나 팔부신중의 자리라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 탑의 본래 이름이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므로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사방팔방에서 모여드는 불보살이 모여 앉는 자리로 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석가여래가 이끄는 법회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탑이다. - p.110


『대반열반경』에는 ‘중생은 번뇌의 어두움 때문에 지혜를 잃는 데 반해 부처님은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니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한다’는 말씀도 있다. 결국 등은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와 언제나 꺼지지 않는 지혜의 등불이란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이를 영구적인 시설로 만들려는 시도가 생기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석등(石燈)’이 출현하게 된다. - p.160


불교가 들어온 이후 광명을 숭상하는 오랜 전통이 불전에 등불을 올리는 공양과 어우러지며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시적으로 불전에 등불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항상 등불을 올린다는 상징으로 드디어 석등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의 지혜와 가르침을 실천하여 온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법등(法燈)이라는 상징성과 항상 부처님 전에 등불을 공양한다는 의미, 광명을 숭배하는 전통적 믿음까지 전부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 p.163~164


수타사에 드나들면서 유심히 살폈던 유물도 여러 점 있으니 그중의 하나가 대적광전 앞에 있는 돌기둥이다. 대적광전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난간이 없는 중앙 계단 오른쪽에 홀로 서 있는 돌기둥은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일까? - p.254


해인사 대적광전 앞의 노주석과 등롱대를 보노라면 100여 년의 시간 속에서 명멸했던 사찰 조명의 역사를 다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흔적들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해인사가 고맙게 느껴진다. - p.271


이렇게 수미단 하나에도 오랜 기간에 걸친 변화와 역사의 과정이 있다. 무려 1,000년 이상의 시간 속에서 지금의 수미단이 탄생한 것이다. 법당 안 부처님 앞에 간단히 놓여 있던 탁자가 가리개형으로 바뀌고, 다시 부처님까지 함께 모시는 계단식 2단, 3단의 수미단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그 과정 중에 남아 있는 수덕사 대웅전의 대좌형 수미단과 함께 앞에 놓인 탁자도 다 우리가 귀하게 보고 보호해야 할 문화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 p.341


반은 자연이고, 반은 인공이라는 우리나라의 미는 삼국시대부터 나타나 있고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바로 불국사의 대석단이다. 이것은 ‘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이란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p.347


바로 이 자연석과 인공의 장대석이 맞닿는 부분이 압권이다. 장대석의 아랫부분을 자연석의 들쑥날쑥한 윗부분에 서로 이가 맞도록 자연스럽게 깎아서 얹었기 때문이다. 곧 자연석 석축 위에 수평의 장대석을 얹기 위해 장대석의 아랫부분을 자연석의 굴곡과 맞아떨어지도록 깎아내는 그랭이 공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공법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건축 공법인데 삼국 통일 후 신라 건축물에 많이 나타난다. - p.347


이 일주문을 만드신 스님의 창의력과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절로 들어가면서 왼쪽 기둥으로 삼은 돌에 문패를 새겨 놓으신 것이다. 복잡한 내용은 없다. 네모나게 파 놓은 틀 안에 한문으로 ‘佛’, 이 한 자만을 음각으로 새겨 놓은 것이다. 절집의 주인은 부처님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마치 여염집의 문패같이 새겨진 이름을 보고 누구나 살며시 미소 지을 수밖에 없다. - p.391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 | 노승대 지음 | 불광출판사 | 432쪽 | 3만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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