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을 묻다]①
포스코 '퍼스트 무버' 선언
유럽업체 오랜 기간 준비
진짜 경쟁력은 '스케일업'
수소 유동환원기술 가장 앞서
머리 맞대고 함께 고민할 때
“탄소중립 전환을 제2의 창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포스코가 선진 철강사 기술 수준에 빨리 도달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로 성장해왔다면 탄소중립 전환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면서 가는 거지요. 50년 전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쏟아져나와 온 국민이 감격했던 것처럼 수소 환원으로 철을 생산해내 감격할 순간도 곧 올 겁니다.”
장세환 포스코 탄소중립전략그룹장은 “석탄 대신 100%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대량 생산을 위해 시험설비를 도입 중”이라며 “2026년부터 연간 30만t 규모의 파일럿 설비를 활용해 2030년 상용기술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그룹은 2020년 12월 아시아 철강사 최초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로드맵을 구체화할 컨트롤 타워 조직인 탄소중립전략그룹을 지난해 1월 CEO 직속으로 신설했다.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길 개척에 나선 장세환 그룹장을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회의실에서 만났다.
-스웨덴 철강업체 SSAB는 수소환원제철로 트럭도 만들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가와 상업적 경쟁력을 갖췄느냐는 다른 문제다. SSAB는 시간당 1t의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한다. 설비 고장 없이 계속 생산하면 이론적으로 1년이면 8760t이다. 포스코 고로 1기에서 1년에 최대 500만t을 생산한다. 550분의 1 수준이다. 포스코는 상업화 관점에서 대량 생산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스케일업(규모 확대)이 진짜 경쟁력이고 핵심 기술이다. 이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코는 2026년까지 30만t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파일럿 설비 투자를 추진 중이다. 단계적으로 100만t, 250만t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수소 가열 등 추가 기술개발 중이고, 연도별 설비 전환 계획도 수립돼 있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포스코가 계획한 수소환원제철 핵심기술은 유동환원과 대형 전기용해로 운영기술이다. 이 두 가지 핵심 기술을 포스코는 이미 보유하고 있다. 포항 파이넥스(FINEX) 설비에서 연 350만t을 유동환원 방식을 통해 생산하고, 자회사인 SNNC에서 장입 기준 150만t 규모의 ESF(Electric Smelting Furnace)를 운영한다. 세계 철강사들이 벤치마킹을 하고 기술 협력 제의도 해온다.
-철강은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다. 포스코의 탄소중립 달성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쉽지 않은 길은 맞지만, 우리가 설정한 목표인 2035년 30%, 2040년 50%, 2050년 100%를 달성할 수 있다. 수소가 얼마나 필요하고, 구입전력이나 자가전력은 얼마나 필요한지 등 수치와 실행 전략들을 1년마다 세세하게 정리했다. 뜬구름 잡는 계획이 아니다. 엑셀 파일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철강 생산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1t당 2t 수준으로 알루미늄 16t, 마그네슘 46t 등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고, 철강은 재활용률이 85% 이상 되는 친환경 소재이다. 사용량이 절대적으로 많아 총배출량이 많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철강을 대체할 소재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우리는 아직도 철기시대에 살고 있다.
장 그룹장은 올해로 포스코 입사 21년 차다. 그룹장 부임 직전엔 포스코 철강기획실에서 포스코 2050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 실무 총괄을 맡았다.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인 포스코에서 탄소중립 전략을 짠다는 것은 철강 지식과 경험, 전 부문 조직 이해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드맵을 만들어보니, 이를 전사적으로 기획하고 조정하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보고받은 최고경영층은 탄소중립 계획이 문서에 그치지 않고, 경쟁력 있고 실질적인 전환이 될 수 있도록 탄소중립 전담 조직 신설을 지시했고 탄소중립전략그룹이 탄생했다. “밑그림은 그려놨고, 이제 배경 구도도 잡고 하나씩 채색도 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거지요. 무거운 책임감으로 시작했습니다.”
-해외 선진 철강업체들은 탄소중립 준비 잘하고 있나.
▲작년 7월 2주 정도 유럽 등 해외 경쟁사 동향과 진행을 확인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왔다. 유럽은 탄소중립을 환경 캠페인이 아니라, 과학, 기술 관점에서 탄소중립 방법을 수립했고, 국가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업과 국가가 함께 전환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짤츠키타에서 진행 중인 SALCOS 프로젝트는 전체 비용의 40%에 해당하는 약 1조4000억원을 지원받는다. 아르셀로미탈도 던케르크 제철소 1조2000억원 등 유럽에서만 2조원 수준의 지원을 받으며 설비 전환 중이다. 우리와 산업 여건이 비슷한 일본도 올해부터는 설비전환에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GX(Green Transformation) 정책을 발표하고 지원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은 탄소중립을 일본 산업 재도약 기회로 삼고 200조엔 수준 기금을 만들어 기업 탄소중립 전환을 지원한다.
-조강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 철강사들은 어떤가.
▲중국은 탄소중립 목표 시점이 2060년이다. 국가 목표는 우리보다 10년 늦지만, 고객사 등 글로벌 이해관계자들은 탄소감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미룰 수만은 없다. 일반 소비자들도 ‘지구 환경을 위해 친환경 제품에 돈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인식 전환이 되는 중이다. 조강생산 세계 1위 보무강철도 고로에서 순산소를 활용한 탄소감축, 수소를 일부 포함한 가스를 활용하는 샤프트 방식의 직접환원철 시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는 어느 정도까지 왔나.
▲탄소중립 관련 투자 규모로만 보면 글로벌 톱티어 수준이다. 연간 생산능력이 600만~700만t 수준인 유럽의 강소 철강사는 2030년대 중반 설비 전환 50%, 혹은 100%를 하겠다고 한다. 연 300만t 전기로 하나면 50% 수준의 전환인 셈이다. 우리 회사는 연간 생산량이 3800만t이니까 300만t짜리 하나 놓으면 8% 정도 되는 거다. 포스코는 2026년 광양에 연 250만t 규모 대형 전기로 투자, 같은 해 포항에 30만t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파일럿 설비투자가 계획되어 있다. 경쟁사 대비 기술개발 수준과 투자 규모가 작지 않다.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도 업계 화두다. 포스코 경쟁력은 무엇인가.
▲비용 절감이다. CCUS 사업에서 탄소 포집 비용이 전체의 60~70%를 차지한다. 공기 중에 날아가는 탄소를 한번에 더 많이 잡아낼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60% 농도라면 100개 잡아서 60개 탄소를 받아내고, 20%면 20개만 받아내는 거다. 포스코는 파이넥스라는 독자 유동환원기술로 탄소 농도 70%를 포집할 수 있다. 20~30% 수준인 일반 고로나 발전소 탄소 포집보다 2배 이상 효율이 높고 비용도 그만큼 낮아진다. ‘동해 가스전 활용 CCS 프로젝트’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탄소 포집 단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액화탄산 사업을 검토 중이다. 수년 내로 국내 시장에 액화탄산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관련 설비 구축에 투자규모는 약 1000억원으로 전해진다. 고로 배가스(排Gas, Flue Gas)에서 탄소를 포집해 순도 99.9999%의 액화탄산을 직접 제조한다는 계획이다. 액화탄산은 탄산음료, 반도체, 조선, 의료,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널리 쓰인다. 주로 석유화학업계에서 생산해왔으나 경기 침체 심화로 공장 가동률을 낮추면서 탄산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탄소중립 시대를 앞두고 정부가 준비해야 할 부분은.
▲탄소중립 시대가 오면 화석 연료가 하는 역할을 다 수소가 해야 한다. 철광석 등 금속제조공정에서 환원제 역할도 해야 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 연료의 역할도 해야 한다. 수소를 얼마나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가가 탄소중립 전환의 관건이다. 미국에서는 청정수소 생산 설비 투자금의 30%를 세액공제하거나, 1㎏당 3달러의 보조금을 주겠다고 하고, 호주도 Under2 정책을 내세워 호주달러 2달러 이내로 공급하겠다고 한다. 유럽도 수소 1㎏당 4유로의 보조금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수소 1㎏당 100엔으로 공급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산업계에서 정부에 요청했다.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수소 지원 방안에 대해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소 생산, 수송, 저장에 대한 인프라와 지원방안에 대해 기업과 정부가 함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동력이 엔진에서 모터로 바뀌면서 전력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발전 능력 확보와 그리드(Grid) 확충이 필요하다. 발전소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위치한 해안선을 중심으로 한 CF100 HVDC Grid(무탄소 초고압직류송전망) 등은 그리드 부하와 산업의 스코프2(Scope2) 탄소저감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예전 기업은 경쟁사에 뒤처지면 몰락했지만 요즘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몰락합니다. 미국이 안보 전략에 철강을 넣고 유럽은 CBAM에 포함한 것만 봐도 철강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 자동차, 중공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것은 고품질 철강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적기에 공급받는 점이 크다고 생각해요. 철강 분야 탄소중립을 위해 이제는 기업과 국가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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