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직원 추락사에 관리업체 대표 집행유예
한 업체가 평균 24단지 관리하는 실정
전문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재검토 필요"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작업 중 추락사한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공동주택 관리업체 대표와 관리소장이 1심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공동주택 관리업체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등 현장 특성상 관리·교육해야 할 사업장과 직원이 방대한데다 개인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업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해 운영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부장판사 이석재)은 지난 12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아파트 관리소장 배모씨(63)와 공동주택 관리업체 대표 정모씨(62)에 대해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기계전기반에서 근무하던 60대 근로자 B씨가 지난해 4월15일 사다리에 올라 천장 누수 보수작업을 하다 1.5m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와 관련해 주의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공동주택 관리업체에 적용돼 유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고용노동부는 지난 13일 경기 용인시 소재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분리수거장 지붕 보수 작업을 하던 중 떨어져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도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중이다.
공동주택 관리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업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모 관리업체 관계자는 "다른 산업과 달리 공동주택 관리는 현장이 수십 곳에 달한다. 모든 곳에 대한 위험성 평가와 특성 교육을 전부 해야 하는 실정이라 애로가 많다"며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제대로 듣지 않는 현장 직원도 많다. 아파트 단지에 나가 있는 경비원과 미화원들에게 교육을 강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의 '2022년 주택업무편람'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주택관리업체 546곳이 전국 1만3270개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고 있다. 업체 1곳이 평균 24개 단지를 관리하는 셈이다. 다른 관리업체 관계자는 "고령자도 심야 근무와 고된 육체노동을 하다 보니 건강상 이유로 업무 중 쓰러지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다른 모든 현장의 사고를 예견하고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동주택 관리 현장에서의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2019~2021년 주거용 부동산 관리업이 속한 '부동산업 및 임대업'에서 발생한 요양재해자(3일 이내에 치유할 수 없는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에 걸려 산업재해 보상을 받는 근로자)는 719명, 사망자는 17명이었다. 유형별로는 넘어짐 174명, 떨어짐 120명, 업무상 질병 68명, 절단·베임·찔림 58명 등 순이었다. 사업장 내 교통사고와 감전, 폭발 등 업체의 직접적 부주의로 인한 재해는 6건에 그쳤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법인뿐만 아니라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까지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중대재해법의 적용 범위는 상시근로자가 5명 이상인 사업 또는 사업장이다. 위탁관리 공동주택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각 아파트가 개별 사업장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은 사업을 기준으로 적용해서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이어도 업체 전체 직원이 5명 이상이면 법 적용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업체가 담당하는 아파트 단지의 상주 관리사무소 직원이 3명이더라도 이 업체의 전체 직원이 5명만 넘으면 해당 아파트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업체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사고 예방이 누구를 전과자 만드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원래 법 취지에 맞게 사고 예방 대책에 더 초점이 맞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충분한 경제적 보상과 유가족과의 합의 등이 이뤄진다면 법 적용을 예외 해주는 방안을 고려해봄 직하다"며 "사업 종류별로 적용 범위를 세분화해서 발주처 등 다양한 주체가 책임을 나눠서 지도록 하는 것이 사고 예방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의 사고 예방 효과는 크지 않으므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엄벌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산업안전보건법 구체화 등을 통해 사고 예방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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