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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바다가 심연의 작은 자갈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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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하)

프라하 여행의 백미인 프라하성(城). 그 아래가 말라 스트라나, 성 아랫마을이다. 이곳에는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이 있다. 카프카의 41년 생애가 집약되어 있는 곳. 카프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곳을 찾는다면 카프카의 연인 코너에서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펠리체 바우어, 율리에 보리체크, 밀레나 예젠스카, 도라 디아만트. 부스 4개에 네 여성과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한다. 보헤미아의 천재 소설가와 사랑을 나눠 불멸(不滅)로 남은 여성들.


박환덕 서울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2003년 범우사에서 출간된 서한집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이 책을 읽다 보면 1939년의 빌리 하스와 1982년의 박환덕이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봐서는 안 되는 은밀한 편지를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죄의식이다. 361쪽에 달하는 편지 속에는 사랑의 환희와 고뇌, 문학에의 열정, 유대인의 정체성, 경계인의 불안, 결핵균에 허물어져 가는 육신 등이 그려진다. 그중 일부만을 발췌·소개한다.

밀레나 예젠스카

밀레나 예젠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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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제가 당신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단지 당신이 커피숍의 탁자 사이를 걸어 나갔을 때, 그때의 당신 모습, 당신 옷, 그것만이 아직도 생생하게 보일 뿐입니다.’ <1920년 4월, 메란>

이 편지는 프란츠가 작품 번역을 희망하는 밀레나를 프라하의 한 카페에서 만나고 나서 한참 후에 보낸 편지다. 서신 교환은 답장을 받고 편지를 쓰는 게 보통이지만 카프카의 경우는 달랐다. 빈의 밀레나에게 편지를 쓰고나서 답장이 오기도 전에 또 편지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일주일에 여러 통의 편지를 쓸 때도 있었다.


‘…당신이 문장 하나하나를 얼마나 충실하게 번역했는지가 저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체코어로, 당신이 하신 것과 같이, 그렇게 충실하게 번역할 수 있고 그렇게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독일어와 체코어가 그렇게 비슷한가요?…’ <1920년 4월 말, 메란>


‘당신은 내가 유대인인지를 물으셨는데, 어쩌면 그것은 농담일 것이고, 사실 당신은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해하는 유대인 기질을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겠지요.…유대인들의 불안정한 지위, 내면적으로도 불안하고 사회적으로도 불안한 상황을 고려할 때에 무엇보다도 잘 알 수 있는 현상이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현재 수중에 갖고 있는 것 내지 이미 이빨 사이에 넣고 있는 것 외에는 결코 자신의 소유물로 믿지 않으며, 거기에다 수중에 갖고 있는 소유물 외에는 그들에게 살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한번 잃어버린 것은 결코 다시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으며…유대인에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1920년 5월30일, 메란>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사진= 조성관 작가]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사진=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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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편지를 받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불면의 뇌수로 답장을 써야 한다니 그거 아주 멋진 일입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서, 단지 행간 사이를 오가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눈빛과 숨결을 느끼며 이렇게 행간 사이를 거닐고 있으니 아름답고 행복한 나날처럼 느껴집니다. 설령 머리가 병들고 지치고, 월요일에 뮌헨을 경유해서 떠나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날은 아름답고 행복한 날로 남을 것입니다.’ <1920년 6월1일, 메란>

‘약간의 타격을 받았습니다. 파리에서 전보가 왔는데, 늙으신 외숙부님께서 내일 밤에 프라하에 오신다고 합니다. 왜 타격이 되느냐 하면, 시간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로서는 모든 시간이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생각하기 위해서, 당신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서 쓰여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곳 집은 안정이 되질 않을 것 같습니다.…’ <1920년 7월6일, 화요일 아침, 프라하>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당신은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게 해주셨습니다.…왜냐하면 마침 내가 일어선 그 순간에 급사가 당신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계단에서 그 편지를 개봉했는데 사진이 들어 있지 않겠습니까? 사진이! 이 형언할 수 없는, 1년치의 편지보다 더 소중한 영원한 편지! 신나는 일입니다.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있겠습니까. 가엾은 사진, 두근거리는 가슴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1920년 7월16일, 금요일, 프라하>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면 달리 살아갈 수는 없고, 오직 불안에 사로잡히고, 불안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불안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강압을 받지 않아도 희열을 느끼며 그렇게 불안에 빠질 것입니다. 나는 완전히 불안의 상태에 몰입해 버릴 것입니다 …’ <1920년 7월21일, 수요일, 프라하>

1922년 프라하 구시가광장에서의 카프카. 밀레나와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을 때의 모습이다.   [사진=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1922년 프라하 구시가광장에서의 카프카. 밀레나와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을 때의 모습이다. [사진=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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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나는 멍하니 정신이 나가고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당신의 전보를 잃어버렸습니다. 없어졌을 리는 없습니다만, 찾아야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좋지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당신 책임입니다. 전보가 그처럼 멋진 것이 아니었다면,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니지는 않았을테니까요…’ <1920년 7월31일, 토요일, 프라하>


‘… 열차시간표 덕으로 더욱 멋지게 된 방법: 마찬가지로 4시12분에 이곳을 출발하지만, 이미 밤 7시28분에 그뮌트에 도착하게 됩니다. 일요일 오전 특급열차로 출발한다 해도, 10시46분에 출발이므로 우리에게는 15시간이 넘는 시간이 있게 됩니다. 그중 몇시간 동안 잠도 잘 수 있겠지요. 더 좋은 방법도 있습니다. 꼭 이 기차로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오후 4시38분에도 프라하행 열차가 있으니, 그 기차를 타고 가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21시간 동안 같이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보세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매주 그 많은 시간 동안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그뮌트 역은 체코령인데, 시가지 쪽은 오스트리아령입니다. 빈 사람이 이 체코역을 지나기 위해 여권을 필요로 할 정도까지 여권 행정이 어리석게 이루어져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빈으로 떠나는 그뮌트 사람들 역시 체코 비자가 있는 여권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 1920년 8월2일, 월요일, 프라하 >


‘…당신이 어떻게 불안한 마음을 품고서 토요일을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내게 묻는다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에(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이해가 더딘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치 바다가 심연에 있는 아주 작은 자갈을 사랑하듯이, 나의 사랑이 당신 위에 가득히 흘러넘칩니다-하늘이 허락해주신다면, 나 역시 당신 곁에서 다시 자갈이 되고 싶습니다) 온 세계를 사랑하며, 그 세계에는 당신의 왼쪽 어깨도 속해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처음에는 오른쪽 어깨였습니다.…그 세계에는 또한 당신의 왼쪽 어깨도 속하고, 숲속에서 내 위에 있던 당신의 얼굴, 내 밑에 있던 당신의 얼굴, 거의 드러난 당신의 가슴에 안겨 휴식하던 것도 속하지요. 따라서 우리가 이전에 하나였다는 당신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1920년 8월9일, 월요일 오후, 프라하>


‘맺음말의 번역은 아주 훌륭합니다. 그 이야기 중에는 모든 문장, 모든 단어, 모든-이렇게 말해도 된다면-음악이 불안과 연관 있습니다. 그때에 그 상처는 처음으로 긴긴밤에 입을 딱 벌렸습니다. 내가 느끼기에, 그 번역은 불안과의 이런 연관을 당신의 마법적인 손으로 정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이젠 당신도 아시겠죠…’ <1920년 8월28일, 토요일, 프라하>

프라하 신유대인묘지에 있는 카프카 묘.  [사진= 조성관 작가]

프라하 신유대인묘지에 있는 카프카 묘. [사진=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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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의사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내 기대와는 달리 의사도 저울도 내 건강이 좋아진 것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나빠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전지 요양은 떠나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습니다.…그곳은 결핵 전문 요양원입니다. 그곳에서는 어디서나 하루종일 기침소리가 나고 환자들의 열이 그치지 않으며, 육식을 해야만 하고, 주사를 놓을 때 저항하면 옛날의 형리 같은 사람들이 환자의 팔을 마구 비틀어대며…’ <1920년 8월31일 화요일, 프라하>


‘…오후 내내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도처에서 귀에 따갑게 들었습니다. 유대인을 비루먹은 종족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증오받는 곳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1920년 11월 중순, 프라하>


‘…그리고 이 편지들은 단지 고통을 줄 뿐이고, 치유할 수 없는 고통에서 생겨나서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낳을 뿐입니다. 이 겨울을 나는데-게다가 고통은 점점 커지는데-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나 저기나 말없이 조용히 있는 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1920년 11월, 월요일, 프라하>


카프카는 1920년 11월 말 밀레나에게 편지를 쓰고 1922년 3월 말까지 편지를 쓰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사랑도 식어갔다. 마지막 편지는 베를린 슈테글리츠에서 12월23일에 쓴 엽서다. 결핵으로 죽어가는 운명에 대한 체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표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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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밀레나는 카프카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이었다. 카프카가 죽었을 때 프라하 신문이 그녀에게 추도사를 의뢰했다는 사실이 모든 걸 웅변한다.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대한 답장을 이 추도사로 갈음한다.


‘카프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실하지만 세상에 낙담한 채 자신의 길만을 외롭게 걸었기 때문이다.…카프카는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전멸시키는, 보이지 않는 악마로 가득찬 세계를 보았다. 카프카는 살아가기에 너무 예민했고,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가 그렇듯 투쟁하기에는 너무 허약했다.…카프카는 타인을 알 수 있는 위대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별나고도 심오한 방법으로 세계를 파악했던 카프카는 그 자체로 유별나고도 심오한 하나의 세계였다. 세계를 투명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카프카는 이 세계를 감당할 수 없었으며, 이성적 사고가 아니라면 카프카에게 죽음만이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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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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