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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가자지구 비극의 시작, 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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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제게 한번만 더 힘을 주시어 제 두 눈을 뽑은 블레셋에게 원수를 갚게 하소서."


머리카락에 힘이 깃들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 삼손(Samson)의 죽음과 얽힌 구약성경 내용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가 마지막 괴력을 발휘해 블레셋인들의 신전을 무너뜨려 죽은 곳이 공교롭게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교전이 발생한 그 ‘가자(Gaza) 지구’이기 때문이다.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심도시인 가자시티 도심의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여있다.[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심도시인 가자시티 도심의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여있다.[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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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접경지대 일부를 점령하고 주민들까지 포로로 끌고 갔다. 이스라엘은 전 병력을 집결하고 예비군 30만명을 징집해 가자지구에 대한 초토화 작전에 돌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자칫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가 날 것으로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번 교전을 두고 이란의 배후설, 미국 대선을 앞둔 이스라엘의 정치적 공작 등 갖가지 음모론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가자지구의 오랜 분쟁역사를 설명하긴 어렵다. 최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국제정세만 가지고 보면, 이 분쟁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과격한 테러로만 비춰지기 쉽다.


국제사회에서 가자지구 분쟁의 보다 본질적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과 장기간 이어져 온 ‘지하수’ 분쟁이다. 매년 3월22일 유엔이 지정한 ‘세계 물의 날(World Water Day)’마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정착촌의 지하수 분쟁은 단골 주제로 나오곤 했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늘 때마다 생겨나는 각종 담수화시설과 펌프,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명수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지구온난화로 이스라엘의 주요 수원지대인 요르단강과 갈릴리 호수, 사해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양측의 충돌은 더욱 빈번해졌다. 가자지구와 이집트 시나이반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지하수층을 놓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격돌이 더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담수화 설비를 계속 늘려가는 한편, 가자지구에서 설치한 담수화시설은 전투기 공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파괴하면서 지하수 확보에 열을 올려왔다. 이스라엘 최남단 도시이자 가자지구와 함께 시나이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에일라트(Eilat)에 담수화 설비가 집중돼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자지구의 인구 또한 폭증하면서 물분쟁은 더욱 표면화됐다. 1970년대 4차 중동전쟁 당시 40만명 수준이던 가자지구 인구는 이제 240만명으로 지난 50여년간 무려 6배나 급증했다. 기껏해야 우리나라 세종시 정도 면적인 사막지대 도시가 200만명 이상의 대도시로 커지면서 식수문제는 엄청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가자지구 주민들의 1인당 평균 하루 물 사용량은 88ℓ 수준으로 유엔이 권고한 최저 물 사용량인 100ℓ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이런 극단적 물부족 상황은 하마스를 비롯한 가자지구 내 강경 무장정파들을 더욱 공격적으로 만들고 주기적인 분쟁을 야기해 왔다. 앞으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어떠한 중재노력을 벌인다해도 지하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 물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 전엔 고질적인 분쟁의 고리를 끊기 어려울 것이다.





이현우 국제2팀장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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