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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북송·재탈북' 청년, 남한 온 지 18년 만에 정교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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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대 김성렬 교수…외교 전공
"끝까지 포기 않으면 목표 이룰 수 있어"

탈북과 북한 수용소 생활, 재탈북을 거쳐 우리나라에 정착한 북한 청년이 역경을 딛고 국내 대학 첫 정교수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부산외대 김성렬(38) 외교 전공 교수다.


5일 부산외대에 따르면 김 교수는 2학기부터 국제정치이론, 남북 관계론, 미국 외교 정책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외대는 탈북민이 국내 대학 정교수가 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부산외대 김성렬 외교 전공 교수[사진출처=부산외대 제공, 연합뉴스]

부산외대 김성렬 외교 전공 교수[사진출처=부산외대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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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청진에는 식량 배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데다 집안 사정까지 어려워 그는 풀과 국수를 섞은 풀 국수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김 교수의 어머니는 유일한 재산이었던 TV를 팔아 밑천을 마련해 밀가루 장사를 시작했다. 북한 내 화교 등이 들여온 중국산 밀가루를 떼어다가 장마당(시장)에서 되파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외화벌이 업체들이 장마당에 나타나 직거래를 하면서 어려워지고 말았다.

김 교수가 12살이었던 1997년 3월 그의 어머니는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첫 탈북을 시도했다.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한 김 교수 가족은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3년째 되던 해 주변인 신고로 중국 공안에 붙잡히는 바람에 김 교수는 어머니, 누나와 함께 신의주로 북송돼 3개월간 수용소에서 강제노역했다.


간신히 수용소에서 풀려난 김 교수 가족은 다시 청진으로 갔지만,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생계를 이을 길도 막막했다. 결국 김 교수는 두 달 만에 재탈북을 시도해 원래 일했던 중국 공장에 자리 잡았고, 두 달 후 어머니와 누나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도착했다.


김 교수는 스무 살이던 2005년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행은 당시 베이징 민박집에서 일하던 그의 어머니가 우연히 알게 된 브로커를 통해 이뤄졌다.

김 교수는 교육 격차가 신분 격차로 이어지는 북한의 한계를 절감했기에 한국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북한에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과정인 인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그는 한국에서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에 다니며 1년여 만에 초·중·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07년 한동대 국제어문학부에 입학한 김 교수는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후, 국제 정치 및 외교와 관련한 공부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연세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정부 장학금인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탈북민 장학생으로 미국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에 진학한 그는 1년 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졸업한 정치학 명문이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내가 대학교수가 된 것처럼 열정을 갖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전을 갖고 끝까지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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