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리 개인전 '패싱 타임(PASSING TIME)' = "오스틴 리는 어떠한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가 아티스트가 되기 전 권투선수였던 것처럼 말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롯데뮤지엄은 오스틴 리(Austin Lee)의 국내 최초 개인전 '패싱 타임(PASSING TIME)'을 개최한다. 오스틴 리는 기존 회화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시각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사람들이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경험한 복잡다단한 감정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여행’으로 기획됐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감정을 주제로 한 회화, 조각, 영상 등 작품 50여 점이 출품된다.
작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아티스트로 그의 작업 방식을 살펴보면 먼저 디지털 드로잉을 활용해 이미지를 구상한다. 그는 이렇게 구상한 디지털 이미지를 캔버스에 에어브러시로 그리거나, 3D 프린터를 이용해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디지털 이미지를 그대로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들은 기쁨, 슬픔, 사랑, 불안 등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담겨있다. 작가는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인간성을 탐구하여 상호 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유도한다.
'패싱 타임(PASSING TIME)'은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경험한 복합적인 감정을 성찰하는 테마로 기획됐다. 사회적 단절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시간 속에서 혼란을 겪는 인간 내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반복 재생되는 미디어와 음악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느끼는 혼돈을 극대화한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복도는 거대한 시곗바늘을 형상화했다.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게 교차한 공간에서 다양한 감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뒤섞이며 삶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게 성찰한 후, 타인을 이해하고 상실의 경험을 나누어 서로가 연결될 수 있게 유도한다. 관람객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마음의 이정표를 찾는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뮤지엄.
▲왕쉬예(王舒野) 개인전 '인식의 저편' = 학고재는 왕쉬예(王舒野) 개인전 '인식의 저편'을 진행한다. 왕쉬예는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으로 1989년 중국 공예 미술학원(현재 칭화미술학원)을 졸업했다. 1990년 일본에 정착한 뒤 현재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인정받는 작가다.
옛 중국 미학에 무현(無絃)이라는 개념이 있다. 줄이 없는 거문고를 뜻하는 이 단어는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 음악의 경지를 표현해낼 길이 없음을 시사한다. 하여 도연명(陶淵明)은 줄 없는 거문고를 손이 아닌, 마음으로 타고 마음으로 희열을 맛봤다. 중국 회화 미학에도 그릴 수 없는 경지를 뜻하는 무가회(無可繪)라는 개념이 있다. 아무리 정밀하게 그려도 이는 자연주의에 귀속될 뿐이고, 아무리 시적 정취를 불어넣어도 의경(意境)은 쉽사리 태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이에 순자(荀子)는 “군자는 학문을 온전하고 순수하게 하지 않으면 족히 아름다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君子知夫不全不粹之不足以爲美也)”라고 말했다. 그릴 수 없는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중국 회화 미학의 영원한 과제였다.
현대 중국회화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로 양분돼 발전했다. 중국의 동시대 회화는 형식주의 미학도 받아들여 의미 있는 형식(significant form)을 쉼 없이 추구해왔다. 하지만 왕쉬예는 그 어떠한 영역에 귀속되지 않으면서 무가회의 회화에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사실주의도 아니고 표현주의도 아니다. 근본적이면서도 철학적 전제를 상정해 사물(존재와 관계)을 매우 주의 깊게 들여다보다 그림으로 표상하는 철학적 회화다. 때에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 특성을 표현주의적 몽환주의(expressive illusionism)라고 지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근본적 철학의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며 알게 되는 모든 감각, 즉 오온(五蘊)이라 부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인식의 고유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은 완전한 것이 아닌 인간의 재현 능력이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그린다. 곧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사물의 본질이 자리하는 지점을 사유로써 그리려는 것이다. 이를 작가는 “사물에 즉(卽)한다”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거의 모든 작품에 '시공나체·즉(時空裸體·卽)'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시공간의 본질을 회화 세계로 드러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것은 무가회의 회화를 동시대적 회화언어로 추구해왔던 장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작가는 1950년대 출생의 냉소적 사실주의 회화 이후 새로운 활로를 찾지 못하는 중국 현대회화의 방향성을 철학적이고 사유적이면서 회화적 깊이를 추구하는 근작을 통해 독창적 방식으로 제시한다. 전시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홍보람 개인전 '존재하기-위안의 형태들' = 홍보람 개인전 '존재하기-위안의 형태들'이 아트링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3 예비전속작가 지원'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작가는 대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2008년부터 진행해 왔던 추상 작업의 주제로 자연과의 정서적 교류를 바탕으로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존재함과 관계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존재하기'라는 주제로 완성해나간다.
전시는 작가가 종이, 판넬 등 평면에 그렸던 자연을 닮은 형태들을 2년여 간 깎고 다듬어 손에 잡히고 스스로 존재하는, 벽에서 솟아오른 듯한 부조 형태로 만든 20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인간관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은 품고 자연 안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자연은 그 질문들에 통합적 과정으로서의 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마음속에 축적된 자연의 형태들은 작가에게 위안의 형태로 다가왔고, 작가는 정서적, 정신적 충격 속에도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과 주변의 우리와 함께 나누고 싶어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부연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늘 자연적인, 숨 쉬는 재료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나무가 주재료로 작가가 새로운 작업 방식을 찾던 중 함께 거주 작가로 지냈던 한국화가에게서 조언을 얻어 아교, 호분을 사용해 완성했다. 해 질 녘 어스름에 보이는 언덕, 어둠 안에 그 많던 색의 이야기를 간직한 존재 그 자체의 형상들은 검은빛의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작가에게 검은색은 존재의 모양 자체를 드러내는 명징함이다. 긴 시간 완전한 집중을 가능하게 한 반복되고 느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스무 점의 작품은 바다에 떠 있는 섬과 같이, 혹은 함께 존재하는 우리 같이 서로 어우러져 위안의 서사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전시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트링크.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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