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각심을 가지세요."
최근 한국의 한 예능 프로그램을 거쳐 유행처럼 번진 이 문장이 중국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중국 내 애국소비에 기대어 품질 개선과 가격 경쟁력을 외면하고 있는 자국 브랜드를 향한 일침이다.
발단을 제공한 것은 중국의 유명 왕훙(인플루언서) 리자치. 그는 지난 9일 라이브 방송을 통해 중국 현지 화장품 브랜드인 '화시쯔'의 눈썹 펜슬을 79위안(약 1만4700원)에 판매하다가 소비자와 언쟁을 벌였다. 한 소비자가 단위 무게(0.07g) 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제품과 비교해도 가격이 비싸고, 품질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리자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때로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면서 "월급이 수년 간 올랐는지 안 올랐는지, 열심히 일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조롱하듯 말했다. 이 발언은 높은 청년실업률과 경기 침체 우려 탓에 커진 젊은 소비자들의 우울감에 불을 붙였다. 3043만명에 달했던 그의 웨이보 팔로워 수는 27일 현재 기준 200만명 가량 감소했다. 결국 그는 눈물로 사과했지만, 여론은 돌아서지 않고있다.
한국에서도 쇼핑호스트가 실언을 해 민심이 돌아선 일이 있었던 것 처럼, 이번 일도 한 인플루언서의 태도 문제로 마무리 될 수 있는 이슈였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화시쯔'와 '국산'으로 번졌다.
지난 14일에는 화시쯔 1.5kg이면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해시태그가 2억300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화시쯔의 919위안짜리 메이크업 브러쉬 5개 세트가 합성섬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며 비난이 일었다. 한 때 중국의 자랑이었던 화시쯔는 그렇게 일순간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무분별한 애국심, 애국심에 기생해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을 외면한 자국 기업에 경각심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결국 지난 19일 화시쯔가 직접 나서 자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문의 끝에는 "백송이의 꽃이 피어나면, 국산품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애국심에 기댄 은근한 호소였다. 비난은 더 커졌다. 지난 26일에는 분위기를 바꿔볼 요령으로 웨이보에 "나 화시쯔, 6살 반이에요. 국내를 기반으로 글로벌하게 뻗어가는 하이엔드 브랜드가 되는 꿈이 있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번엔 소비자들이 똘똘 뭉쳐 화시쯔를 조롱했다. 중국 현지 언론은 최근 '919위안 브러쉬 세트 구매 의사가 있느냐'는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1만8000명 가운데 80%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이 즈음 중국 매체들은 유사한 내용의 보도를 쏟아낸다. 국산 브랜드가 어떤 길을 가야하느냐는 것이 요지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알고 있다. 한 때 열풍같던 한국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의 인기가 지금은 희미해진 것 처럼, 화시쯔 역시 외면받을 수 있다. 품질에 대한 고민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외면은 더 순식간에 이뤄질 것이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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