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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1억 아일랜드 경제기적은 애플 덕일까 [테크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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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GDP, 절반 이상은 가짜
애플·구글 등 美 대기업 활동 때문
'더블 아이리시' 등 조세회피 전략
빅테크의 아일랜드 법인서 이뤄져

인구 502만명. 1인당 소득 10만2217달러. 서유럽의 섬나라 아일랜드의 2021년 경제 실적입니다. 한때 '켈틱 타이거'로 불리며 유럽 대륙의 강소국으로 추앙받았으나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급추락했고, 이후 슬럼프를 딛고 눈부신 도약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나라입니다. 국내에서도 아일랜드의 경제 기적과 관련된 책, 기사들이 여러 번 다뤄진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가 일군 경제 기적이 실은 허상에 가깝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늘날 아일랜드의 국가총생산(GDP)은 상당 부분 아일랜드와 전혀 상관없는 미국계 빅테크들이 거머쥐고 있습니다.

법인세만 낮은 게 아냐…아일랜드의 관대한 지재권 제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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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아일랜드는 낮은 법인세를 통해 글로벌 빅테크 본사들을 끌어들여 경제 회복을 노렸습니다. 현재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12.5%로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여기에 연구개발투자액(R&D)의 25%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도 부여하지요.


하지만 아일랜드 조세 경쟁력의 핵심은 단순히 법인세만이 아닙니다. 진면목은 지적재산권(IP) 제도에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저작권, 의약품 제조법 등 IP를 활용해 발생한 수익에 대해 최대 100%까지 자본 공제를 지원합니다.


우리가 흔히 '빅테크'라 칭하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기업들의 주요 사업은 IP 사업입니다. 애플은 공장 한 채 가지지 않은 채로 디자인과 설계도에 대한 소유권만 보유하고 있지요. 실제 제품은 다른 기업에 하청을 맡겨 생산합니다. 구글, MS 같은 기업에는 무형 자산인 SW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IP 중심 미국 기업들은 아일랜드로 IP 소유권을 이전시켜 막대한 혜택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애플 아이폰 판매액, 미국이 아니라 아일랜드에 등록된다
애플 아이폰 15 프로

애플 아이폰 15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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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애플을 보면, 아이폰만으로 연간 100조원 넘는 수입을 올립니다. 하지만 애플의 IP는 아일랜드에 등록된 지사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애플은 아이폰의 해외 판매 매출을 아일랜드에 있는 지사들에 등록시킬 수 있습니다. 이후 아일랜드 지사는 거둬들인 금액 중 대다수를 미국의 디자인 설계 부서로, 또 나머지 대금은 중국·대만·인도 등에 있는 하청업체로 전송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의 애플 지사가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제품 수출은 아일랜드에서 이뤄진 꼴이 되므로, 서류상으로는 아일랜드의 GDP에 이득을 줍니다. 그리고 연간 백 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액의 (서류상의) 이동은 아일랜드 같은 소국에는 GDP 그 자체를 바꿔 버릴 만큼 거대한 금액입니다.


애플 아일랜드의 코크(Cork) 테스팅 센터. 이곳을 제외하면 애플이 아일랜드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 [이미지출처=애플]

애플 아일랜드의 코크(Cork) 테스팅 센터. 이곳을 제외하면 애플이 아일랜드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없다. [이미지출처=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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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이것이 바로 오늘날 빅테크 조세회피의 기본인 '더블 아이리시' 전략입니다. 조세회피 과정에서 아일랜드의 지사, 그리고 해당 지사가 세운 또 다른 자회사(미국 세무당국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고 로열티를 전송할 창구)가 동원되기에 더블 아이리시인 셈이죠.


더블 아이리시는 애플뿐만 아니라 구글 등도 활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제약 기업인 화이자도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이 때문에 아일랜드는 제약·화학 강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빅테크가 창출하는 막대한 IP 수입 중 아일랜드가 실제로 얻는 금액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美 빅테크의 더블 아이리시가 만든 '레프리콘 경제'
아일랜드 더블린의 펍에서 맥주를 즐기는 시민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일랜드 더블린의 펍에서 맥주를 즐기는 시민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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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왜곡 현상 때문에 유럽에선 아일랜드를 '레프리콘 경제'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레프리콘은 아일랜드의 민간 설화에 등장하는 요정인데, 그만큼 아일랜드의 GDP와 국민 소득은 신기루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아일랜드 통계 당국도 이 문제를 직시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은 매년 국가 GDP와 더불어 '수정 국민 소득(Modified GNI·M-GNI)'을 발표합니다.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미국계 빅테크의 IP 수입액을 아예 제외한 경제 통계입니다.


이렇게 수정된 국민 소득은 수정 전과 비교해 2분의 1이 채 되지 않습니다. 즉, 실제 아일랜드인의 부유함 정도는 서유럽 평균과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좀 더 뒤처진다는 뜻이지요.


오히려 빅테크들로 인한 경제 왜곡 현상 때문에 골치를 썩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선 아일랜드의 실제 경제와 서류상의 경제 사이 괴리가 너무 크다 보니, 경제 당국 입장에서는 실제 아일랜드인과 기업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기 매우 힘듭니다.


두 번째로 미국, 유럽 등 경제 대국들도 아일랜드의 조세 정책을 눈엣가시로 여기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아일랜드 때문에 빅테크의 조세 회피를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터라 더욱 압박감이 클 겁니다.


실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주도로 2021년 G7은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에 합의했습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해 모든 나라가 적어도 15% 이상의 법인세율을 일괄적으로 적용하자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모두 '더블 아이리시'와 같은 조세회피 모델을 겨냥한 조처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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