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축구클럽 사고 호날두·네이마르 영입
'스포츠 워싱' 논란 빚는 사우디의 행보
자국 경제 구조 다각화-정국 안정 목표
"'스포츠 워싱'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내총생산(GDP)이 1% 정도 증가한다면 나는 스포츠 워싱을 계속할 겁니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가 최근 스포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모습을 두고 자국의 인권 침해 문제에 쏠린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는 스포츠 워싱 논란이 일자 별일 아니라는 듯 대응했다.
그는 "(이러한 논란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추가로 1.5%의 GDP 성장률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에게) 원하는 걸 말해라, 우린 그걸 사들이고 1.5% 증가율을 취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우디서 보는 호날두 경기…'오일 머니' 영향력
사우디는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글로벌 스포츠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축구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사우디 프로리그(SPL) 클럽이 2023년 여름 이적 기간 중 투입한 금액은 9억5700만달러(약 1조3000억원)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이어 세계 2위로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의 빅리그를 제친 것이다.
사우디는 EPL의 주요 클럽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했고, 올해 들어 자국 리그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나스르), 네이마르(알힐랄), 카림 벤제마(알이티하드)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대거 영입했다.
사우디는 자국에서 월드컵 개최도 노리고 있다. 2030년 또는 2034년 개최를 목표로 한다. 당초 이집트, 그리스와 공동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단독 개최로 목표를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축구뿐 아니라 골프와 테니스, 복싱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도 자금을 풀고 있다. 사우디 자본이 후원하는 LIV는 지난 6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미국프로골프(PGA)와 깜짝 합병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에는 PGA 투어와 LIV 시리즈가 2025년부터 통합 대회를 개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우디 경제 다변화 목표…스포츠로 관광산업 육성
사우디가 스포츠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는 바로 경제다. 경제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비전 2030'에 따라 석유 판매에만 의존했던 경제 구조를 미래 신산업을 토대로 변혁해 사우디를 세계적인 '스포츠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 빈살만 왕세자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광업, 인프라, 제조, 운송, 물류 등 모든 부문이 돌아가야 한다"며 관광업을 키우는 전략 중 하나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고 관련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월드컵 단독 개최와 함께 2029년 아시안게임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경제에서 관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우디 경제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3%였으나 지금은 7%까지 올라갔다"며 "특히 스포츠는 과거 0.4%에서 현재 1.5%가 됐다. 그게 바로 경제 성장이고 일자리이며 관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사우디를 방문한 관광객이 4000만명이었는데 이를 2030년에는 1억명, 많게는 1억5000만명까지 키울 것이라고 했다.
세계은행(WB) 데이터에 따르면 사우디의 GDP는 지난해 처음으로 1조달러를 넘어섰고, 1인당 GDP는 3만436달러로 2년 만에 50%의 성장세를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사우디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8.7%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빨리 성장한 국가였다"며 석유 생산과 함께 민간 소비와 비석유 민간 투자가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국민 51%가 30세 미만…"스포츠로 정국 안정 모색"
사우디는 국민 다수가 청년이라는 점을 감안해 스포츠를 정국 안정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사우디 통계청에 따르면 사우디의 전체 인구는 지난 5월 기준 3220만명으로, 이 중 51%가 30세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우디 정부는 이러한 청년 국민 10명 중 8명이 축구를 직접 하거나 축구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SKEMA 경영대학원의 사이먼 채드윅 교수는 CNN방송에 사우디 정부가 청년들 사이에서 급진주의나 반정부주의가 확산해 아랍의 봄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우려해 스포츠를 키우고 화를 달래게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축구 산업이 젊은 노동자에게 고용을 창출하고 수입을 제공하는 것도 큰 이슈이지만, 여기에 왕족을 수호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요인이라고 채드윅 교수는 평가했다.
실제 사우디 내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가나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올린 게시물에 대해 처벌받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도 사우디 내부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탄압받고 있으며 지난해 사우디에서 집행된 사형 건수가 196명으로 30년 내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불투명성 확대-스포츠 워싱 우려 여전
사우디의 이러한 스포츠 투자를 두고 큰 관심이 쏟아지지만 동시에 우려도 이어진다.
CNN은 "사우디가 축구 세계의 질서를 뒤흔들려 한다"며 투명성이 부족한 사우디의 구조상 스포츠 분야에서 거버넌스와 관련한 시스템상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드윅 교수는 "모든 리그를 관리하는 독립적인 기관이 없는 한 정확한 정보가 무엇인지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며 "선수의 이적 가치와 연봉 정보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동시에 빈살만 왕세자는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사우디의 스포츠 워싱 논란은 지속되고 있어 향후 사우디의 자금이 스포츠 시장에 미칠 영향에 세계가 주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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