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예상보다 강세를 보여온 미국 경제가 올가을 한 번에 4가지 악재에 부닥뜨릴 위기에 처했다. 당장 10월부터 연방정부의 셧다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 확대, 학자금 대출 상환 재개, 유가 상승세 등이 동시에 맞물린 탓이다.
일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미 경제는 한 번의 충격을 견뎌낼 수 있겠지만, 동시에 네 번은 견딜 수 있나'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통해 이들 4가지 악재에 주목했다. WSJ는 "파업, 셧다운 가능성, 학자금 대출, 유가 등으로 미 경제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며 "각각 그 자체로는 큰 해가 되지 않지만, 높은 금리로 경제가 이미 냉각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큰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현재 월가에서 많은 분석가들은 최근 미 경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임에 따라 4분기 경기침체가 아닌, 완만한 수준의 경기 둔화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3분기 3.1%에서 4분기 1.3%로 위축될 전망이다. EY-파르테논은 3분기 3.5%, 4분기 0.6%로 예상했다.
이 가운데 이들 4가지 악재는 미 경제를 한층 더 위축시킬 수 있는 위협 요인으로 평가된다. EY-파르테논의 그레고리 다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한 4배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모두 지난주 '매파적 동결'에 나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미 경제에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꼽은 외부요인들이기도 하다.
미국 3대 자동차 업계의 노사 협상이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이미 UAW는 파업을 확대한 상태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앞서 조합원 연설에서 파업 참가 사업장을 기존 3개 공장에서 약 20개주에 걸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의 38개 부품공급센터(PDC)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WSJ는 "초기 여파는 미미할 수 있다"면서도 "광범위한 작업 중단으로 인해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차량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장기화 시 부품공급업체 직원들의 일자리에도 여파가 불가피하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대규모 파업 시 매주 경제성장률은 연율 0.05~0.1%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또한 이러한 파업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개선세를 보여온 공급망을 재차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미시간대학의 게이브 에를리히 교수는 “파업 자체가 국가경제를 경기침체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 모든 것을 합치면 4분기는 험난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연방정부 업무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셧다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미 경제를 둘러싼 우려를 키우는 위협 요인이다. 셧다운을 막기 위해서는 2024년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0월1일 전에 예산안을 처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예산 법안 심의 권한을 쥔 하원 다수당 공화당 내 강경파들이 대폭 삭감을 주장하면서, 며칠 남지 않은 현시점에도 협상 돌파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시간을 벌기 위해 한달짜리 임시예산안(CR)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처리가 불투명하다.
셧다운 시 필수인력을 제외한 연방정부 근로자는 급여를 받지 못한 채 일손을 놓게 되고, 저소득층에 대한 식료품 보조금 지급 등 일부 사회복지 프로그램 집행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WSJ는 "미 경제 전반의 소비지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정부 지출도 일시적으로 축소된다"면서 "현 상태로는 예산안 합의까지 갈 길이 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셧다운은 금융시장에도 여파를 미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차 고개를 드는 중요한 시점에서 주요 경제지표의 발표가 지연, 중단되면서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 역시 높아질 전망이다. 앞서 2018년12월에도 의회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며 약 5주간 부분 셧다운이 발생했다. 당시 연방정부 직원 30만명이 여파를 받았다. 의회예산국(CBO)은 당시 셧다운이 2018년4분기 0.1%, 2019년 1분기 0.2%의 성장률 위축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10월1일부터 약 4380만명을 대상으로 한 학자금 대출 상환이 재개되면서 광범위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웰스파고에 따르면 상환 재개로 인해 내년 미국인들의 주머니에서 최대 1000억달러가 빠져나갈 것으로 추산됐다. 월 상환액은 평균 200~300달러 수준으로 미국의 연간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으나, 여전한 우려 요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팬데믹 여파로 상환이 유예된 3년 반 동안 신용카드 채무 등이 동시에 증가한 상태라는 점도 경계하고 있다.
마지막 위협 요인은 고유가다.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해 여름 배럴당 70달러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으나, 최근 90달러대를 상회하고 있다. 4분기 공급 부족 우려가 잇따르면서 조만간 100달러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른다. 이러한 유가 상승은 휘발윳값 등을 끌어올려 가계에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8월 휘발유 가격은 전월 대비 10.6% 급등해 2022년6월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최근 완화추세를 보이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 지표도 이러한 고유가로 인해 재차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Fed가 주시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에는 변동성이 높은 기름값이 제외되지만, 결국 기름값 상승이 경제 전반의 비용을 끌어올려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Fed의 긴축은 예상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더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다. 파월 의장은 앞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현재 진행 중인 자동차 파업, 연방정부의 셧다운 가능성, 학자금 대출 상환 재개, 고유가 등을 우려점으로 꼽으며 "굉장히 많은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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