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문제 심각… 법원 안팎 "좋은 재판, 사건 적체로 이어져"
고법 부장 승진 제도 폐지, ‘일하는 동기’ 없애… 로펌 이직 줄이어
김명수 대법원장은 22일 "충실한 심리를 통해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신속한 재판보다는 임기 초부터 김 대법원장이 추구해 온 ‘좋은 재판’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판결을 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은 오는 24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부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는 길은, 오직 사법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함에 있다는 굳은 신념과 절박한 사명감으로 새로운 사법의 길을 찾아 대법원장으로서의 여정을 시작했다"며 "재임 기간 내내 사법부가 과거의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지양하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수평적 구조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재판의 믿음은 퇴임을 하는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며 "‘좋은 재판’은 국민이 이를 체감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므로, 국민이 재판에서 지연된 정의로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가 추구해온 가치들도 빛을 잃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법관의 독립은 사법부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모든 사법부 활동의 중심을 ‘재판’에 두고 사법행정은 오로지 ‘재판’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누차 강조해 온 것도, 지난날 사법행정이 저지른 과오가 우리 사법의 역사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결과 사법 행정의 재판에 대한 우위 현상은 사법부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됐고, 법관의 내부적 독립도 더 한층 공고해졌다"며 "사법부의 독립된 법관들은 단호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원 안팎에서는 ‘김명수 코트’가 출범한 이후부터 재판 지연과 사법신뢰 문제는 더 심각해졌으나, 법원행정처를 축소하는 등 사법행정의 권한을 분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부터 줄곧 ‘좋은 재판’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좋은 재판의 결과는 사건 적체로 이어졌다. 특히 민사소송 처리 기간은 지난 5년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민사 소송은 금전적인 분쟁이나 소유권 다툼 등 실생활과 밀접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국 법원에서 민사합의 사건의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평균 14개월이 걸렸다. 민사단독 사건은 평균 5.5개월이 소요됐다. 2심의 경우 지난해 고등법원은 11.1개월, 지방법원(항소부)은 10.8개월이 걸렸고, 3심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 지난해 평균 11.7개월이 소요됐다. 지난해 종결된 사건을 기준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상고심 판결까지 받기 위해서는 평균 1095일이 걸렸다. 이는 2021년 기준 977일 걸린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재판의 속도가 계속 느려지고 있는 대표적인 이유는 김 대법원장이 추진한 인사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김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등을 도입하면서 법원 내부의 동력이 크게 저하됐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 재임 전에는 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법원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인사 체계가 바뀌면서 승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고법 부장판사 제도가 사라지면서 고법 부장판사 승진 문턱에 있던 사법연수원 25기부터 일선 지법에서 부장판사로 업무를 하고 있는데, 검찰은 25기가 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 구성원들의 동기 부여가 떨어졌고 대형 로펌으로 대거 이직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재판 지연에 대해 "여러 복합적 요인이 함께 섞이다 보니 재판 지연 어려움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법관을 늘려야 실질적인 재판 지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국회의 탄핵안 의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사표 수리 요청을 반려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를 전면 부인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 측이 당시 대화가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고 국민의힘이 2021년 2월 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혐의로 김 대법원장을 고발,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은 현직 대법원장 신분인 점 등을 고려해 김 대법원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자제하고 있었지만, 김 대법원장이 퇴임한 이후부터는 수사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김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는 법관 수를 줄이면서, 사법행정의 권한을 분산했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법원행정처 비법관화로 인해 행정처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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