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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연필에 펜 덧칠 지우개로 싹싹…12달 내 마음 만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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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오브젝트’ ‘원모어백’ 등 유명 소품숍에서 개인전을 열고, 책방과 다양한 팝업 행사에서 그림을 기반으로 제작한 작품들로 사랑받고 있는, 그림 작가 단춤의 첫 만화 에세이다. 작가를 대변하는 화자들을 통해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들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디지털 드로잉보다는 종이에 그리는 방식을 고수해 모든 원고의 토대를 연필과 펜으로 그렸다. 종이에 연필로 초안을 작업한 다음, 펜으로 테두리를 따라 그린 후, 튀어나온 연필 선을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워 완성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달마다 두 가지 이야기를 담은 만화 24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배치했다.

[책 한 모금]연필에 펜 덧칠 지우개로 싹싹…12달 내 마음 만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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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머릿속을 걸어가면서 새어 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요리조리 피하다 결국엔 붙잡혀버렸다. 내 마음이 꽤나 엉켜 있구나. 생각들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 급하게 풀려고 노력할수록 엉키는 바람에 나도 잘 모르겠는 이 마음을 놓아주기로 했다. 애써 맞서 싸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엉킨 마음을 확인했으니 이제 풀어나갈 일만 남은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나는 토끼가 되어 여유로이 낮잠도 자고 거북이가 되어 부지런히 풀어나가는 거지. 다시 나아갈 보통의 하루를 위해. - 「기도를 위해 포갠 두 손」 중에서


나는 계속 다정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런데 다정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이 아니더라고. 쓰면 쓸수록 바닥이 보이는 단지였다. 친절함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내가 더 이상 다정한 사람이 아닐까봐 조금씩 두려워졌다. 예전만큼 다정하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고 불편한 상황에도 내내 억지로 웃는 내가 미웠다. 그러다 끝끝내 나를 위한 다정은 남겨두지 않았단 사실이 나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마음이 공허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나를 위한 다정이 없다는 것. - 「누구를 위한 다정일까」 중에서

요 며칠 내가 옅어진 기분이었다. 꽁꽁 숨기다 결국 머뭇거리며 스스로에게 묻는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이 순간을 의심하게 만들고 의심이 싹터 슬픔을 자아낸다. 그대로 사라질 것 같을 때 잘 구워진 양파 냄새처럼 나를 편하게 하는 것들을 곁에 두었다. 힘내어 오늘을 마무리한다. 의심이 싹트는 것을 막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젠 쓰러진 나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 말기를. 잘 쉬어가라고 토닥여주기를. 알고 있잖아, 무엇이 널 편안하게 하는지. - 「이미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고 산책하는 동안 오래도록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넌 살아갈 이유를 찾으며 노력하는 모든 것들이 기특하다 했지. 모든 걸 사랑스럽게 바라보려는 널 보면서 나도 너만큼이나 아름답게 살고 싶어진다. 앞으로 네가 넘어갈 고비들을 너답게 잘 넘어가길 기도할게.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고서 함께 나이 먹어 가고 싶다. 우리 그렇게 함께 나아가자. - 「사랑스러움을 잃지 말자」 중에서


친구와 주고받는 짧은 문장 속에서 바쁘고 힘든 날을 보내는 너를 알아챘다. 무슨 말을 전해주는 것이 좋을까. 잘 지내냐는 안부조차 무겁게 느껴질까. 답이 없는 안부더라도 말해주고 싶어. 친구야, 오늘 식사는 했니? 힘들고 바쁘더라도 식사는 거르지 마렴. 잠시 밖으로 나와 햇살을 느끼고 바람 따라 움직이는 구름 가득한 하늘도 한번 바라봐. 빛을 받은 단풍은 더 붉게 빛나고 노란 은행잎은 황금색이야. 벌써 가을이 한창 지나가네.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발에 걸린다. 있지, 너는 모르는 사이에 가을이 지나간다며 슬퍼했지만 이 가을은 낙엽을 밟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단다. 반짝거리고 화려한 단풍도 가을이지만 떨어진 낙엽을 밟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가을이라 말해주고 싶어. 나의 가을은 네가 있어 외롭지 않구나. 너의 가을도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해. - 「우리는 서로의 힘」 중에서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 우울이 자잘하게 끼어 있는 사람. 이제야 잘 맞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그저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날씨 같은 사람이라고. 오늘은 날이 흐리고 눈이 왔으니까 입김처럼 스르륵 사라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름다운 노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옷을 바꿔 입는 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 - 「날씨 같은 사람」 중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 ‘이 순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겠지?’ 그럴 때면 난 조금 슬퍼져. 선명하던 손짓은 시간이 흐르면서 향기만 남기고 사라질 테니까. 사라지는 걸 구태여 붙잡을 순 없지만 사랑이 불어와 붉어진 얼굴에 다시 한번 그 마음을 반겨본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고 읊조리며 잊지 않도록 잘 간직해서 꺼내 볼 수 있게 할 거야. - 「볼이 붉어지는 사랑」 중에서


이달의 마음 | 단춤 지음 | 세미콜론 | 212쪽 | 1만65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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