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기회 충분…적극 대응 필요"
2년 전보다 3배 뛴 EU-ETS 배출권
CBAM 수익 자국 총요소생산성에 투입
"정부, 철강 기술 개발 적극 투자해야"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환경부 등은 국내 기업을 위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 이행 지침서를 이달 말 발간한다. 최근 한국철강협회 주최로 열린 '스틸 코리아 2023'에서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는 "이달 말 정부 합동으로 마련한 CBAM 이행 지침서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기업들은 CBAM 대응을 위한 세부적인 내용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CBAM이란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EU가 도입하려는 일종의 무역관세다. 쉽게 말해 제품을 만들 때 나오는 탄소를 줄이려면 돈이 든다. 탄소배출 규제가 강한 나라에서 제품을 만들면 불리하다. 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물건을 만들어 규제가 강한 나라로 수출할 때 그만큼 세금을 내도록 해 불균형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올해 2월 범부처 유럽연합(EU) CBAM 대응 전담팀(TF)을 만들고 대(對)EU 협의 방안과 대응 방향을 논의해왔다. EU는 다음달부터 2025년 12월까지 CBAM 전환기간(Transition Period)을 운영한다. 기업들은 다음달부터 12월까지 4분기 이산화탄소 배출 데이터를 모아서 내년 1월 말 EU에 최초 보고한다.
전문가들은 "유럽이 '전환기간'을 둔 것은 일단 기업들로부터 데이터를 받아본 뒤에 나중에 손보겠다는 여지를 남겨 둔 것"이라며 "아직 EU와 협상할 기회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오롯이 다 받아들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한다.
![방문규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지난해 12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현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제공=총리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2121321260850568_1670934368.jpg)
방문규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지난해 12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현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제공=총리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먼저 세계무역기구(WTO) 위반사항 점검이다. EU는 CBAM을 설계하면서 WTO에 합치하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일부 어긋난 사항들이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권 상무는 "EU의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uropean Union Emissions Trading System·ETS)는 유럽 소규모 업체들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지만 EU에 수출하는 EU외 철강 중소기업들은 CBAM 신고서에 모든 철강생산 과정에서 나온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CBAM은 현시점 EU-ETS 배출권 가격으로 인증서를 구매토록 하고 있으나 EU 철강사는 과거 과잉 할당된 배출권 또는 과거 낮은 가격으로 팔리던 시절 샀던 배출권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다"며 "EU 철강업체와 역외 생산업체가 동일한 탄소비용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현재 EU에서 배출권 가격은 80~90유로 수준이나 2020년 12월 이전 가격은 30유로 이하다. EU 공식 자료를 보면 2021년 말 기준 EU-ETS의 잉여 배출권은 14억t으로 유럽 전체의 1년 총배출량에 육박한다. 권 상무는 "이 14억t의 상당 부분을 철강사가 가지고 있다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라며 "정부를 통해 이런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유럽에 협상 또는 질의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세미나에 참석한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기업들은 탄소배출량, 수입단가, 최종 고객사 등 내부 정보를 모두 제출하고 보고해야 한다"며 "불공정 행위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탄소가격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왔던 비교우위 자유무역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보겠다는 시도로 보인다"며 "WTO 체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법률적 검증이 끝난 것처럼 나오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탄소비용을 많이 지불했다고 주장해서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유럽에 돈을 덜 내도 된다. 이 비용들을 어디까지 주장을 할 거냐가 관건이다. 권 상무는 "배출권 거래 비용이나 기후환경요금에 붙은 ETS 비용은 주장하면 먹힐 것 같지만 애매한 비용도 많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 유럽도 이게 된다 안 된다 얘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 업계 공통된 목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EST 비용 외에 전력 요금 중 기후환경 요금, 연료의 개별소비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교수도 "우리가 탄소세를 내고 있다라는 걸 정부가 유럽에 증명해야 하고 증명할 수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탄소세와 관련된 비용이 많기 때문에 그 세금들을 '탄소세'라는 이름으로 모두 바꾸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체계적이고 치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 교수는 "EU는 CBAM 수익을 EU의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기술수준·경영혁신·제도 등이 생산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에 사용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자국 내 산업 보호로 돈이 들어가고 이를 자국 내 기술 투자에 사용하겠다는 게 EU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기술 개발 부분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총요소생산성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점"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 무역 구조 안에서는 한국에 불리한 구조가 된다"고 했다.
권 상무는 "한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은 EU와 경쟁국 업체와의 제품 1t 생산당 온실가스 배출량(배출원단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매출로 나눈 값) 차이로 결정될 것"이라며 "핵심은 저탄소 제품생산 공정으로 전환"이라고 했다. 그는 "온실가스를 더 많이 감축할수록 수출가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CBAM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온실가스를 줄이는 노력을 기업 스스로 하느냐 정부 지원을 받아서 같이 하느냐는 것이 이 시장에 대한 대응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
CBAM 직격탄을 맞게 된 철강업계에서도 대응 마련에 분주하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부터 CBAM 관련 사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고 현대제철 과 동국제강 그룹은 저탄소 제품 개발, 해외 친환경 인증취득 등으로 수출 규제에 대응하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큰 철강재 위주로 규제를 유예하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만일 100을 수출하면 20은 타격을 받더라도 80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CBAM을 비롯해 탄소절감을 위해 추가로 엄청난 R&D 비용과 상용화에 대한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며 "정부의 금융지원과 금융기관의 현실적인 협조가 절실하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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