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페니, 환경 요인 가격 반영 캠페인 진행
올리브 오일, 토마토, 듀럼 밀 크게 오를 듯
식품 공급망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어
지구를 뒤흔드는 기상이변이 이른바 '밥상 물가'를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다. 수년 전부터 폭염, 폭우, 가뭄 등 이상 기후로 농산물 작황이 부진을 겪으면서 식품 공급망 곳곳에서 밥상 물가 오름세가 시작됐다.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농산물은 물론 육류, 유제품까지 식품 대부분을 생산, 소비하는 데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 요인 반영하니 치즈 가격 94%↑"…獨 슈퍼마켓의 실험
지난달 독일의 한 슈퍼마켓 체인점이 실시한 실험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3일(현지시간) 독일 도이치벨레(DW) 등에 따르면 현지 슈퍼마켓 체인점 페니는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일주일간 2150개 전 지점에서 '실질 가격(Wahre Kosten)'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는 9개 제품을 대상으로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적 요인을 경제적으로 환산해 소비자 가격에 반영, 판매하는 캠페인이었다. 뉘른베르크 공과대, 그라이프스발트대 연구진과 함께 환경적 요인에 따른 소비자 제품 가격 인상 폭을 예측했고 이를 실제 판매할 때 적용해 실시한 이벤트였다.
비엔나소시지 가격은 3.19유로(약 4600원)에서 6.01유로(약 8600원)로 88% 인상했고, 모차렐라 치즈 가격도 1.55유로로 74% 올랐다. 마스담 치즈의 경우 94%나 오른 4.84유로에 판매가가 결정됐다. 치즈의 경우 ▲메탄이나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비용 85센트 ▲집약 낙농과 동물 사료 생산 등에 따른 토양 파괴로 인한 비용 76센트 ▲농부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등 농약 사용에 따른 비용 63센트 등이 반영됐다.
페니의 실험은 환경적 요인이 식품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가격으로 체감할 수 있게끔 한 이벤트였다. 이상 기후로 곡물이나 과일과 같은 농산물 작황이 어려워지면 농식품 가격은 자연스레 올라가고 이를 원재료로 하는 식품 가격도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비롯한 육류, 그리고 우유, 치즈와 같은 유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이 다량 배출돼 이를 막기 위한 각종 조치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만큼 관련 비용이 증가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는 것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실험에 참여한 연구진은 페니가 적용한 실질 비용을 모든 제품에 광범위하게 제시하는 건 과학적 근거 부족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도 이러한 실험이 이뤄진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봤다. 페니 측은 실험 전 인터뷰에서 매출 감소가 예상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라며 인상한 가격으로 식품을 판매해 얻은 이익은 기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인근 농장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토마토·올리브 오일· 듀럼밀 가격 ↑…파스타, 어떻게 만드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상기후가 나타나면 곧바로 타격을 입는 게 바로 농산물이다. 당장 올해 밀, 쌀과 같은 곡물과 토마토, 오렌지 등 채소 가격이 작황 부진으로 수요와 비교해 공급이 급격히 줄자 가격이 빠르게 치솟았다. 이러한 농산물을 원재료로 하는 소매품 가격은 영향을 받게 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럽의 토마토 주요 생산지인 이탈리아는 올해 폭염으로 생산량이 줄었다. 이탈리아산 토마토는 캔, 소스, 케첩 등에 활용되는데 주로 노지에서 재배해 기후 변화에 민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블룸버그는 "지난 5월 이탈리아 북부의 농가들이 토마토 가격 인상 폭을 사상 최고인 40%로 가져가기로 합의했다"며 "이들이 유럽 공급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소매 가격에 더 큰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폭염은 세계 최대 올리브 오일 생산국인 스페인도 어려움에 빠트렸다. 기온이 과도하게 오르면 올리브 나무가 수분 확보를 위해 열매를 떨어트리거나 나무 자체가 망가지더라도 열매에 수분을 제공하는 식으로 버티게 된다고 한다. CNN방송에 따르면 스페인의 올리브 오일 생산량은 현재 약 62만t 수준으로, 5년 평균 약 130만t에서 급감했다. 수확기인 10~11월이 지나도 5년 평균보다 30% 이상 감소한 70만t 수준에 수확량이 그칠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은 지난해보다 두 배 정도로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조사기관 민텍에서 오일을 담당하는 카일 홀랜드는 "이 정도 수준의 가격에서 소비자들이 계속 올리브 오일을 구매할지, 아니면 다른 오일로 전환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파스타 원재료인 듀럼밀 가격도 올해 급등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유럽의 파스타 소매 가격은 약 12%, 미국에서는 8% 상승했다. 주요 생산국인 캐나다와 이탈리아 등에서 가뭄과 악천후가 발생해 2023~2024년 세계 듀럼밀 생산량이 2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세계 재고량도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국제곡물협의회(IGC)가 예측한 상태다.
"식량에 닥친 기후 리스크, 전망한 것보다 더 크다"
밥상 물가는 앞으로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상승 폭은 지구온난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지 여부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상기후가 농산물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속도가 더딜수록 타격은 줄고 대비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ECB)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가 지난 5월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인해 2060년까지 식량 가격은 0.6~3.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NBC방송에 따르면 막시밀리안 코츠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과학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지 못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미국의 식품 가격이 2060년에는 최대 7%포인트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밥상 물가가 오르는 과정에서 농산물이 주요 생산되는 지역이 달라지거나 대체재가 마련되는 등 식품 공급망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듀럼밀의 경우 캐나다와 이탈리아가 생산에 어려움을 겪자 터키가 새로운 공급원이 됐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생산되는 '포모도리노 디 만두리아'라는 종의 토마토도 남부 대신 북부에서 생산되기 시작해 관련 농가가 이동을 검토하는 경우도 생겼다고 한다.
코리 레스크 다트머스대 기후 연구원은 "글로벌 식량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회복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됐지만 이상기후가 예상한 것보다 더 일찍 발생하고 있어 기후 리스크가 전망한 것보다도 더 크고 빠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판도를 뒤바꿀 리스크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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