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사건 1년 지났지만
'인천 스토킹 살인' 등 여전
스토킹 판단 법적 범위 보수적
처벌기준 약해 집행유예 상당수
지난해 9월14일 스토킹으로 여성 역무원이 살해된 ‘신당역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최근 인천에서 스토킹을 당하던 여성이 살해당하는 등 스토킹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유족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스토킹에 시달리다 제 동생이 죽었다’는 제목의 글과 함께 피해자 이은총씨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글에 따르면, 이은총씨는 경찰이 지급한 스토킹 방지용 스마트워치를 상시 착용하다가 "가해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 스마트워치를 반납해달라"는 경찰 요청으로 돌려준 뒤 나흘 만에 스토킹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경찰은 스마트워치 반납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인천 한 아파트 복도에서 스토킹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30대 남성 A씨가 지난 7월28일 오전 인천 논현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런 사건은 스토킹 범죄 처벌과 피해자 지원에 대한 제도가 여전히 미비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에 따른 긴급응급조치 집행 건수와 잠정조치 신청 건수는 각각 2254건, 5557건으로 집계됐다. 이 추세라면 올해 말까지 지난해 전체 긴급응급조치 집행 건수(3403건)와 잠정조치 신청 건수(7441건)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긴급응급조치는 100m 이내 접근금지, 휴대전화 등 통신 금지 등으로 경찰이 집행하며, 긴급응급조치는 서면경고, 위치추적장치 부착, 1개월 이내 구치소 유치 등으로 법원 결정으로 집행한다.
신당역 사건 당시 스토킹 범죄 처벌 제도의 미비점이 지적되자 지난 7월11일 개정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 정보를 배포하거나 정보통신망이나 전화를 이용해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이 상대방에게 나타나게 하는 행위 등이 스토킹 유형에 추가됐다. 기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던 긴급응급조치 불이행에 대한 제재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강화됐다. 스토킹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방지법)도 지난 1월 신설됐다. 스토킹범죄로 인한 피해자와 그 가족 등에 대해 보호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아직 범죄자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양형연구회가 올해 1~5월 1·2심 선고가 나온 스토킹처벌법 위반 단일 범죄 385건을 분석한 결과, 징역형 집행유예가 126건(32.7%)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벌금형 106건, 징역형 실형 21건, 벌금형 집행유예 6건 등이었다. 스토킹 처벌 기준은 앞서 법 개정 과정에서 수정되지 않았다.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잠정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3년 이하의 징역일 경우 정상참작 사유가 있다면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다. 이 규정 때문에 스토킹 범죄에 집행유예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6월 인천지법은 상해·주거침입·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27세 남성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B씨는 지난 1월 동거하던 전 연인에게 8차례 전화를 걸고 직장 근처에 찾아가는 등 스토킹했다. 이로 인해 접근금지 조치를 받았음에도 피해자에게 문자메시지를 5400여통이나 보냈고, 피해자가 사는 가족 집에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욕설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신의 행위를 인정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집행유예는 곧바로 스토킹 가해자가 보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스토킹 적용 범위가 너무 좁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우편물이나 소포를 계속 보내는 행위까지 막지는 못한다. 또 피해자의 반려동물에게 위협을 가해도 스토킹으로 보기 어렵다. 서혜진 법무법인 더라이트하우스 변호사는 "특정한 행위만 스토킹으로 규정하는 현행법은 정보통신 신기술 등을 이용해 계속 생기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스토킹 범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관련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여러 건 발의돼 있으나 모두 계류 중이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시 우편을 통해 피해자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잠정조치와 긴급응급조치 시 분리하는 거리를 기존 100m에서 300m로 확대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 발이 묶여 있다. 박민규 법무법인 안팍 대표 변호사는 "스토킹 개념 자체가 여전히 실정법에서는 추상적이고 불분명하게 규정돼 있다"며 "시행규칙이나 시행령 형식 등 하위 법령을 통해 스토킹 범죄 유형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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