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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숙련공]①[르포]"늙은 韓노동자는 별로"…건설현장 철근공·목수 자리 꿰찬 외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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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아파트 주차장 붕괴, 철근 누락 사태 등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건설 안전사고가 연이어 벌어졌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설계, 시공, 감리, 이권 카르텔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가 지목됐다. 이런 지적에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사람이다. ‘노가다’로 불리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 자리하면서 건설 산업 인력 구조가 노후화되고, 이탈이 심화한 결과다. 이에 <아시아경제>에서는 인력 이탈로 빚어진 건설 산업의 구조를 들여다보기 위해 공사 현장과 새벽 인력 시장을 둘러봤다. 또 건설기술인 재직 현황을 분석했으며, 전문가의 입을 통해 구조적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지난 6일 오전 5시께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삼거리. 인근 인력시장에는 건설 현장 일자리를 구하는 외국인 노동자 600여명이 모여 있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한 공간에는 밀리터리 무늬의 운동복 바지와 작업화, 배낭을 착용한 이들이 내뿜은 담배 연기와 함께 중국어 대화 목소리로 가득했다. 출근 시간대보다 이른 시간임에도 인부들을 태우기 위한 승합차가 교차로 내 주정차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통경찰이 배치되기도 했다.


지난 6일 오전 5시께 서울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건설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있다. [사진=곽민재 기자]

지난 6일 오전 5시께 서울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건설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있다. [사진=곽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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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숙련근로자가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우고 있다. 과거에는 잡부라 불리는 저숙련 건설노동을 주로 담당했지만, 한국 숙련근로자들이 고령화된 데다 젊은 층도 건설업을 기피하면서 철근공, 형틀 목수 등 고숙련 건설노동도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서울 남구로역에서 10년간 일했다는 인력업체 부장 정모(45)씨는 “2~3년 전에만 해도 형틀 목수, 철근공 등 숙련공 비율이 한국과 외국인 7대 3 정도는 됐었지만, 지금은 99%가 중국동포, 동남아 등 외국인 근로자라고 보면 된다”며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원청에서도 소견서 등을 까다롭게 요구하면서 나이 든 한국인보다는 젊은 외국인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오전 5시10분께 교통 경찰이 인부들을 태우기 위한 승합차가 교차로 내 주정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속하고 있는 모습.[사진=곽민재 기자]

오전 5시10분께 교통 경찰이 인부들을 태우기 위한 승합차가 교차로 내 주정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단속하고 있는 모습.[사진=곽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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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보내는 인력이 많을수록 수수료를 받는 인력사무소 특성도 외국인 근로자를 선호하는 배경이다. 애초에 한국인 숙련공이 워낙 소수인데다, 그마저도 아파트보다는 상가나 단독주택 작업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숙련공 선호 현상이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35년간 건설 현장에서 형틀 목수로 일했다는 김철(60)씨는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숙련공과 달리 중국동포들은 10~15명 정도의 팀을 꾸린다. 인력사무소도 내보내는 인력수가 많을수록 돈을 버는 구조라 남구로 50~60개 인력사무소의 99%는 외국인 목수팀을 쓴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외국인 상당수 '불법 근로자'…전문성 떨어져

문제는 외국인 기능공들 대부분이 건설 경험을 한국에서 처음 쌓는 경우가 많고, 도면 등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김씨는 “남구로역에 모이는 외국인 기능공들 대부분 실력이 떨어지지만, 인력사무소에서도 신분증 정도만 확인할 뿐 자격에 대해 검증하는 절차는 사실상 없다”며 “우스갯소리로 이곳에서는 거푸집 자격증 등이 없어도 못주머니만 차면 형틀 목수 전문가가 된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형틀 목수는 콘크리트의 ‘모양’을 만드는 직업이다. 일반적으로 철근 뼈대를 둘러쌀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서는 거푸집이 필요한데 설계 도면대로 건축 구조물들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모양의 틀을 만드는 일을 형틀 목수가 한다.

오전 5시40분께 남구로역 인력시장. 건설 현장으로 인부를 태우기 위한 승합차가 차도를 따라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사진=곽민재 기자]

오전 5시40분께 남구로역 인력시장. 건설 현장으로 인부를 태우기 위한 승합차가 차도를 따라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사진=곽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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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국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력 중 상당수는 자격 요건을 확인하기 어려운 불법 근로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해 발표한 ‘건설근로자 수급실태 및 훈련수요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실제 건설 외국인력’ 35만여명 중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는 3만2000여명에 불과했다. 이를 제외한 약 32만명이 '불법근로자’로 추산돼 전체의 90.7%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날 인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간다는 중국동포 이모씨(50)는 자신을 30명의 목수 팀원을 둔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신호수라 적힌 빨간색 조끼를 착용한 이씨는 “우리는 친한 현장소장이 많아서 주로 인력사무소를 거치지 않고도 개인적으로 오라는 곳이 많다”며 “거의 항상 못주머니를 차고 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철근팀 70% 베트남 등 외국인…의사소통 어려워

외국인 건설 근로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건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방문한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현장 식당에는 60여명의 철근팀 근로자들의 식사가 한창이었다. 이중 절반이 베트남, 중국동포일 정도로 외국인이 많았다. 식당 내부 벽면에도 ‘드실만큼만 가져가세요!’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베트남어와 중국어로 병기돼 있어 외국인 근로자가 다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4일 오전 11시30분께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 건설현장 식당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곽민재 기자]

지난 4일 오전 11시30분께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 건설현장 식당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곽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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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만난 현장소장 이모씨(60)는 “예전에는 한국 숙련공이 62세 정도가 되면 현장을 떠났는데, 지금은 워낙 사람이 없어서 65세까지 일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며 “특히 철근 작업 등 업무 강도가 가장 센 작업은 외국인이 없이는 공사를 진행하기가 어렵다. 현재 현장 철근팀 50명 중 70%가 베트남, 캄보디아 등 외국인이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 건설현장 식당 안내문에는 '드실만큼만 가져가세요!'라는 내용의 베트남어와 중국어가 병기돼 있었다.[사진=곽민재 기자]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 건설현장 식당 안내문에는 '드실만큼만 가져가세요!'라는 내용의 베트남어와 중국어가 병기돼 있었다.[사진=곽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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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는 공사 대부분을 외국인 숙련공들이 담당하더라도 부실시공 등의 우려는 낮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외국인 숙련공들이 도면을 보지 못하더라도 형틀 차장 등이 도면을 보고 마킹하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대로 따라 작업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며 “베트남 등 외국인 중에서도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통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가 실제 베트남인으로 구성된 철근팀을 만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조차도 할 수 없었다. 막 식사를 마치고 나온 베트남 근로자 반다이(25)씨에게 “안녕하세요. 철근 공사 지시는 어떻게 받나요?”라고 질문했지만, 그는 "또 콩 테 노이 티엥 한(한국어 못해요)"라고 답할 뿐이었다. ‘안녕하세요’라는 기본적인 인사말과 ‘철근’이라는 공사 용어조차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다이씨와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온 7~8명의 베트남 근로자들도 자기들끼리 베트남어로 얘기할 뿐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오후 12시10분께 베트남 철근팀 근로자들이 철근조립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베트남어만 들릴 뿐 작업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한국어는 들을 수 없었다.[사진=곽민재 기자]

오후 12시10분께 베트남 철근팀 근로자들이 철근조립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베트남어만 들릴 뿐 작업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한국어는 들을 수 없었다.[사진=곽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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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건설현장에서는 8개동, 800여가구가 넘는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후 12시10분께 식사를 마치고 나온 베트남 철근팀은 다시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돌아가 철근조립 공사를 시작했다. 푸른색 안전모와 작업복을 입은 채로 이들은 양손에 갈고리와 결속선을 든 채 철근을 하나씩 결합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을 감독하는 한국인 반장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베트남 인부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목소리만 들릴 뿐 철근 작업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내용의 한국어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만성적 인력난…외국인 기능공 활용도 높여야"

하지만 건설현장의 만성적인 인력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2023년 국내 건설현장 인력 수요 176만여명 중 161만여명만 내국인 공급으로 채워질 거라고 전망했다. 건설 수요에 비해 내국인 공급이 15만명가량 부족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건설현장의 현실적 대안인 외국인 기능공에 대한 효과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한국 숙련공이 갈수록 고령화되고, 다단계 하도급으로 공사비 삭감이 심해질수록 임금 지불 능력이 약해지다 보니 저숙련 외국인력의 투입이 늘고 부실시공과 하자 등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무리한 공사기한 등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외국인을 포함한 숙련공 기능교육 강화 및 외국 인력에 대한 체계적 관리시스템이 마련돼야만 건설 현장의 부실 공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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