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 당장 올해 쓸 예산도 부족
남원시, 내년도 사업 전면 재검토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지방교부세를 역대 최대 규모인 8조5000억원 감액하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재정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4일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지자체는 내년도 세입감소 전망에 일제히 세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재정자립도가 높아 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는 불교부단체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다급한 이유는 지방교부세 감액이 예상보다 크기 때문이다. 예산분석 전문 민간싱크탱크인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 7월 내년도 예산안 중 지방교부세 규모를 7조1000억으로 전망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복지 등 감액시키기 어려운 예산을 감안하면 새로운 사업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강선 전북체육회 회장 등 전북 체육인들이 지난달 30일 전북체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파행을 빌미로 새만금 사업의 발목을 잡지 마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재정자립률이 23.8%로 광역단체 중 가장 낮은 전북도다. 전북도는 내년 지방교부세 1900억원, 지방세 1150억원 등 총 2050억원의 세입 감소가 예상된다. 기존에는 지방교부세 감소가 1300여억원 가량으로 예상됐었다. 예상보다 금액이 더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전북도는 올해 당장 사용할 비용부터 급하다. 전북도는 올해 지방교부세 1조3320억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현재까지 4200억 가량이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예년에 비하면 2000억 정도가 덜 온 것이다.
전북도는 일단 행정운영경비 10% 일괄 삭감을 검토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행정운영비는 크게 사무관리비와 공무원 출장 등에 들어가는 여비 등을 꼽을 수 있다"며 "관공서의 특성상 사무관리비의 경우 프린터용 종이 비용이 가장 많은데 이 비용을 10%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는 심각한 재정압박에 시·군 및 교육청에 주는 법정전출금 교부 유보까지 검토하고 있다. 시·군 보조사업의 도 분담률도 최대 30% 이하로 낮출 것을 고려 중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현재 도의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법정전출금을 교부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지방교부세와 지방세 모두가 줄고 있어, 법정전출금 삭감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지방교부세 2000억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제주도는 내년 2조 1800억원의 국비를 요청했지만 1조 8500억원만 반영됐다. 이 중 해상운송비 지원사업은 100억원을 요구했지만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제주 공공하수처리시설 현대화 사업은 410억원을 요청했지만 163억원만 반영됐다.
세종시는 다른 광역단체보다 고민이 더 깊다. 그간 받아오던 재정특례가 올해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광역과 기초 업무를 겸하는 단층제 지자체라 그동안 연평균 209억원의 재정특례를 받아 왔다. 이 때문에 재정특례를 2030년까지 연장해 연간 약 800억원을 추가로 지원받는 세종시법 개정을 요구 중이다.
기초단체는 더욱 심각하다. 재정자립률이 전국 최하위권인 남원시는 주요 재정 투자사업과 연례반복 행사성 사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사업에 대해 평가해 '우수'는 유지 '미흡'은 삭감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증액'이 없는 상황이다. 남원시는 내년 중점 예산확보 대상 사업으로 ▲남원 드론문화체험관건립(총사업비 250억원) ▲도자전시관건립(150억원) ▲국립 지리산 등산학교건립(80억원) ▲남원·순창 광역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설치(783억원) 등을 선정했지만, 모두 한 푼도 배정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원시 관계자는 "신규사업은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며 "증액의 경우 계속사업 중 공기에 맞춰야 하는 것만 증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염봉섭 남원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예산안을 2.8% 증액했는데, 물가인상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동결"이라며 "여기에 지자체의 경우 사상 초유의 지방교부세 감소라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다급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공감대를 충분히 얻어 기존 사업도 전면 재검토 할 예정"이라고 첨언했다.
지자체 예산 담당자들은 내년 예산도 걱정이지만, 당장 자금이 부족이 더 걱정이라고 전했다. 한 지자체 담당자는 "정부가 올 초 경기 활성화를 위해 예산을 선제적으로 집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이 상황에서 내년도 지방교부금까지 줄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예산의 여유가 전혀 없다. 내년에는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불교부단체인 경기도는 중앙정부와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확장 재정으로 경기부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경기도는 지난달 25일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했다. 이번 추경예산의 규모는 본예산 33조8100억원보다 1400억원이 늘어난 33조9500억원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금은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방교부세가 대폭 감액이 된 것과 관련 지방분권이 흔들릴 수 있다며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 수석연구위원은 "지방의 재정난은 결국 지방분권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이명박 정부 때 감세 정책을 펴면서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 등을 신설한 것처럼 지방재정조정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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