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中에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1위 내줘
저가형 이미 뺏기고 고급형은 아직 우위
초고해상도·대형화·휘는 기술 등 첨단화 열중
현대 디지털 사회에서 디스플레이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릴 정도로 필수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2004년 일본을 제치고 디스플레이 세계 1위를 차지한 후 꾸준히 시장을 선도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급속한 추격에 지위가 흔들린다. 2021년 중국에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고 이미 저가형 액정표시장치(LCD)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고급형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선 아직 압도적이지만 중국의 추적이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초고해상도·대형화, 플렉서블 기기, 롤러블ㆍ밴더블 등 신기술을 적극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도 지난 6월 민관협의체를 출범시켜 디스플레이 초격차를 유지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디스플레이 기술의 현황을 살펴보자.
디스플레이는 빛을 만드는 방식이 개선되면서 발달을 거듭하고 있다. 최초 전자총·진공관으로 만들어진 TV 브라운관 디스플레이는 평판 디스플레이의 등장으로 사라졌다. 평판 디스플레이는 유리판 사이에 형광체가 삽입된 플라즈마디스플레이(PDP), 백라이트로 액체 결정을 비추는 LCD로 구분된다. 최근까지는 직접 발광하는 다이오드를 이용한 LED(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가 많이 사용됐는데, 요즘은 유기화합물을 이용한 OLED가 대세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이보다 한 걸음 더 앞서 페로브스카이트 광소재·메타물질 등을 이용한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적극 개발하고 있다. 우선 지난 6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은 페로브스카이트 발광체를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1839년 러시아의 광물학자 레프 페로브스키가 발견한 광물 구조를 말한다. 이른바 ABC3 화학조성으로 불리는데, 양이온 두 종류가 각각 하나씩 음이온 3개와 결합하고 있는 산화물을 통칭한다. 빛을 잘 흡수하고 광학적·전기적 특성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발광 효율이 좋고 색 순도가 높아 OLED를 대체할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열이나 빛에 노출됐을 때 이온 결합이 불안정해 디스플레이 성능을 저하시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KBSI 연구팀은 시분해 형광 공초점 현미경(FLIM)을 이용해 양자 입자의 상태 변화를 분석해 발광 안정성을 낮추는 원인을 찾았다. 은 나노막대 광결정 기판을 이용해 이온 결합 경로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메타 물질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도 있다. 한국기계연구원(KIMM)은 최근 늘어나거나 접혀도 이미지가 왜곡되지 않는 신축성 메타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돌돌 말거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늘어나거나 접히는 부분에서 이미지가 왜곡되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이 LED는 잡아 당겨 25%나 늘어나도 이미지 왜곡이 없다. 비밀은 메타 물질에 있다. 메타 물질은 인간이 새로 만들어낸 물질로, 극미세 설계를 통해 빛이나 물질의 상호작용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연구원이 개발한 메타 물질은 가로 방향으로 늘어나도 세로 방향으로 줄어들지 않고 본래의 비율을 유지할 수 있다.
요즘 ‘대세’인 폴더블 스마트폰의 주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은 최근 20만회 이상 접었다 펼쳐도 주름이 생기지 않는 불소계 폴리이미드 기반 광학필름을 개발했다. 하루에 500번 넘게 접었다 펴도 1년 이상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내구성을 지녔다.
유연성과 휴대성이 강조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선 ‘앞면’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판도 중요하다. 구부리거나 휘어도 주름이 생기거나 깨지지 않는 기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내부에는 가는 금속 선·반도체들로 구성된 기판이 반드시 존재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해 8월 휘어지거나 늘려도 멀쩡히 작동하는 신축성 무기 반도체 소자 기술을 개발했다. 용수철에서 힌트를 얻어 구불구불한 말발굽 형태의 폴리이미드 유연기판에 고성능 산화물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고밀도로 집적했다. 용수철을 당기면 펴지듯이 힘을 줘서 당기면 구불구불한 말발굽 형태가 직선으로 펴지면서 내부 전선·반도체 트랜지스터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기존 신축성 산화물 반도체 소자 대비 직접도는 15배, 전류 구동 성능은 2배 높다.
초고해상도가 필요한 메타버스(확장 가상세계)용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에서도 우리나라가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조힘찬 카이스트(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 17일 기존보다 훨씬 초고해상도를 자랑하는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용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들 수 있는 패터닝 기술을 개발했다. 높은 색 순도와 발광 효율로 인해 차세대 발광체로 주목받고 있는 양자점(퀀텀닷)이나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과 같은 용액공정용 나노 소재들은 고유의 우수한 광학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균일한 초고해상도 패턴을 제작하는 것이 어렵다.
연구팀은 양자점과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이 가지는 강한 광촉매 특성을 활용해 나노결정 리간드 사이에서 가교(crosslinking) 화학 반응이 쉽게 유도되도록 소재를 설계했다. 이를 통해 발광성 나노소재의 고유한 광학적 특성을 완전히 보존할 수 있다. 실제 560나노미터(㎚) 수준의 패턴 너비를 가지는 초고해상도(1만2000ppi급)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 패턴을 균일하게 제작할 수 있었다. 기존 증강·가상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디스플레이(수천 ppi)보다 훨씬 더 초고해상도를 자랑한다.
카멜레온의 변화무쌍한 피부색이나 공작새의 아름다운 깃털 색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됐다. 지난달 한국전기연구원(KERI) 소속 표재연 박사 등 스마트 3D프린팅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 3D프린팅 기술’이다. 연구팀은 빛의 경로를 제어할 수 있는 3차원 회절격자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자연에서 관찰되는 구조색(structural color)의 원리를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에 활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표 박사는 "기판의 소재나 형태의 제약 없이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구조색을 정확히 구현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3D프린팅 기술"이라며 "디스플레이 장치의 정형화된 ‘폼-팩터(Form-Factor)’ 한계를 극복하고 형태의 다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기술 개발에 따라 우리나라는 디스플레이 기술의 기존 ‘패러다임’을 깨면서 중국의 추격에 맞서나가고 있다. NST 관계자는 "민관 협의체를 통해 디스플레이 관련 산·학·연이 현재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아예 후발 주자들이 따라잡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면서 "최근 기술 개발 동향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의 파괴적 기술들이 잇따라 개발되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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