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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MB정부에 공포 안긴 강동구청장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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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4 서울 강동구청장 재보선
한나라당 ‘강남4구’에서 예상 밖 결과
4월 총선 압승한 서울에서 민주당에 일격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MB정부에 공포 안긴 강동구청장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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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선거는 특징이 있다. 일단 투표율이 낮다. 이런 특성은 투표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젊은 층보다는 장년층의 선거 영향력이 커지는 요인이다. 장년층에서 상대적으로 지지가 높은 보수정당이 재·보선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때는 ‘재·보선=보수정당 후보승리’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유리한 환경에서 치르는 재·보선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그 충격파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한참 앞선 출발선에서 100M 경기를 치르다가 뒤에서 뛰어오는 경쟁자에 추월당한 그런 느낌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에 치른 서울의 구청장 재·보궐선거,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른 4월 제18대 총선까지는 여당의 일방적인 분위기였다.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뒀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통합민주당(81석)보다 두 배가량 많은 153석의 의석을 획득했다.


2018년 6월5일 서울 강서구 화곡역에서 열린 한 서울시장 후보의 집중유세장에서 유권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유세를 듣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2018년 6월5일 서울 강서구 화곡역에서 열린 한 서울시장 후보의 집중유세장에서 유권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유세를 듣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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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을 모두 가진 한나라당의 시대.

하지만 4월 총선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열린 6월4일 재·보궐선거에서 일격을 당했다. 특히 ‘강남의 4구’라는 강동구청장 선거는 충격의 의미를 더한 결과였다.


한나라당은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의 25개 구청장 선거를 모두 석권한 바 있다. 서울에서 특정 정당이 압승을 거둔 사례는 있지만 2006년은 특별했다. 서울 구청장 선거 모두를 승리한 결과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한나라당에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는 질 수 없는 선거였다. 민심의 흐름이 아무리 요동친다고 해도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선거, 2008년 6월4일 강동구청장 선거는 그런 선거였다. 6월4일 열렸던 유일한 서울의 기초단체장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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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통합민주당은 서울에서 밀리던 여론의 흐름을 반전시키고자 노력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서울에 배정됐던 48개 의석 중 40개 의석을 한나라당이 싹쓸이 한 바 있다.


그 후 두 달이 지나 치르는 선거이니 한나라당은 승리가 당연했고, 민주당은 쉽지 않은 선거였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통합민주당 이해식 후보는 53.1%라는,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경쟁자였던 한나라당 박명현 후보는 39.4% 득표율에 머물렀다. 30%대 득표율로 패하자 한나라당 쪽에서는 “참담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청계천 복원 기획단장을 역임한 인물을 후보로 내세웠음에도 민주당에 일격을 당한 결과는 뼈아팠다.


민주당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낸 것도 승리의 요인이었다. 강동구의원을 역임하는 등 지역 기반이 탄탄했던 정치인 이해식의 저력이 발휘된 선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강동구청장을 내줬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6·4 재·보선은 서울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한나라당의 완패로 귀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2020년 8월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2020년 8월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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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상반기는 이명박 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와 제18대 총선 대승으로 여당이 민심의 흐름에서 기세를 잡았다. 하지만 ‘광우병 정국’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민심이 요동쳤다.


여당은 요동치는 민심을 다독일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여론의 흐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정치의 판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민심의 오독은 부메랑으로 다가온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민심은 거대한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수많은 소용돌이와 흐름의 변화가 이어진다. 여론의 흐름을 꿰뚫고 그에 부응하며 국정운영을 이어가야 정치의 순항이 가능한데, 당시 여권은 이와 다른 태도를 보였다.


투표율 23.4%에 불과했던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


‘낮은 투표율=보수정당 승리’라는 공식을 무너뜨렸던 2008년 6·4 재·보선 결과는 여러 의미에서 정치 교훈을 남겼다. 역대 재·보선 가운데 2008년 6월4일 선거가 정치사에 각인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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