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호주 땅속으로 사라진 이산화탄소…SK도 달려간 ‘탄소중립 성지’
[탄소 줄게 수소 다오]
①오트웨이 CCS 실증센터
관찰 위한 첨가제와 함께
액체·기체 중간 상태로 묻어
지하 탐지 모니터링 개발중
덮개암으로 땅 위 누출 막아
기후위기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액체와 기체 중간인 초임계(超臨界, Super critical condition) 상태로 만들어 땅에 묻는다. 이 이산화탄소는 땅속 물에 용해되고 시간이 갈수록 딱딱하게 굳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산화탄소를 지하에 영원히 가두는 이 방법을 활용하지 않으면 2050년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제로(0)로 만들 순 없으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자 탄소중립 핵심 수단으로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라 불리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를 땅에 묻어도 과연 안전한 걸까?
15일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州) 멜버른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 CCS 안전성을 검증하는 곳이다. 서울 여의도만한 땅(4.5㎢, 한강 둔치 포함 면적)에 이산화탄소 9만5000t을 묻었다. 세계 CCS 실증센터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차로 10분 거리엔 주택가가 있다. 이산화탄소가 묻힌 땅 바로 위에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었다. 사방은 고요했다. "눈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땅속에선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용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지하에 주입한 이산화탄소가 주변으로 어떻게 얼마나 퍼지는지 탐지하는 모니터링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량의 첨가제를 넣어 다른 물질과 구분할 수 있도록 한 이산화탄소를 주입한다. 이동 경로를 관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에 일종의 꼬리표를 다는 셈이다. 지질자원연구원은 2008년부터 이곳에서 이산화탄소 지중저장기술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15일 폴 바라클로그 CO2CRC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호주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 내 이산화탄소(CO2) 가스전 앞지층 안내판에서 이산화탄소 저장 덮개암을 가리키고 있다. 덮개암 바로 아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지층이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이른바 오트웨이 프로젝트다. 2004년 시작했고 부지 안정성 등의 검증을 거쳐 2008년 2000m 깊이 고갈된 가스전에 이산화탄소 6만5000t을 주입했다. 가스를 채굴하고 나면 빈 곳이 생긴다. 그 공간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다.
고갈 가스전은 CCS 사업을 하는 기업들엔 ‘귀한 몸’이다. 가스를 뽑아내면서 장기간 축적된 지층 데이터를 활용해 이산화탄소 주입과 저장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주입할 때 가스를 빼내던 기존 설비를 그대로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셰브론, 쉘 등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들은 치열한 CCS 광구 운영권 입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저장소는 한정돼 있고 뛰어드는 기업들은 많은 상황에 다른 회사 분량을 빼앗아 와야 자사 저장 분량을 챙길 수 있다.
한국에선 SK E&S가 국내 최초로 호주 고갈 가스전을 확보해 현지에서 CCS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호주 북서부 해상의 바로사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할 때 그 과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인근 고갈 가스전인 바유운단(Bayu Undan)으로 보낸다. 이산화탄소는 지하 3㎞ 사암층에 영구히 잠든다. SK E&S는 지난해 호주 이산화탄소 저장소 탐사권 입찰에서 산토스, 셰브론과 함께 G-11-AP 광구 운영권도 획득했다. CCS는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15일 호주 빅토리아주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에서 데이비드 위탐 CO2CRC 수소 프로그램 리더가 이산화탄소 주입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오트웨이 센터는 2009년 인근 땅속 1500m의 대염수층(帶鹽水層)에도 이산화탄소 1만5000t을 주입했다. 염분 농도가 높은 대염수층은 분포 범위가 넓고 미세한 구멍이 많은 다공질의 암석이라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2015년에도 1만5000t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했다. 이때부터 최신 모니터링 기술을 적용했다.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주입하는 시추공에 광섬유를 설치했다. 트럭이 땅 위를 다니면서 지중 압력을 가하면 광섬유 탄성파 모니터링 기술을 통해 땅속 이산화탄소 움직임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그전까지 6개월에 한 번씩 땅속 이미지 데이터를 얻었지만 이 기술을 통해 이제 이틀 간격으로 관측한다.
CCS 저장 지층 바로 위에는 이산화탄소가 땅 위로 누출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덮개암이 있다. 고온과 고압 상태에서 진흙과 먼지가 압축돼 침적물로 형성된 진흙암이 일종의 코르크 마개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기술도 이곳에 와서 실증한다. 박 연구원은 "세계 최초로 주입과 저장의 효율을 10~20% 개선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압력을 더 낮게 유지해서 더 많이 더 안전하게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자연지진으로 인한 누출이나 이산화탄소 저장으로 인한 인공지진 유발 위험은 거의 없다고 본다. 오트웨이 실증센터를 운영하는 호주 국책연구기관 CO2CRC의 폴 바라클로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저장소는 800m 이상의 깊은 지하에 있기 때문에 지층 여러 개가 덮고 있어서 땅 위로 누출될 가능성은 없다"며 "이산화탄소는 기름이나 가스 성분보다 다루기 용이해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박 연구원도 "이산화탄소가 노출될 정도의 지진이라면 수십만년 이상 저장돼 온 천연가스 저장소에서도 가스가 벌써 새어 나왔어야 하지만 그런 사례는 없다"고 했다.
15일 호주 오트웨이 국제 CCS 실증센터에서 박용찬 지질자원연구원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CCS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서윤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CCS로 감축한 이산화탄소는 탄소배출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 호주 내 기업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흡수하는 활동을 통해 ACCU(Australian carbon credit unit)라는 호주탄소배출권을 받는다. 탄소 배출을 초과하거나 배출량이 적을 경우 기업끼리 서로 사고팔 수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CCS에 저장한 이산화탄소를 ‘배출되지 않음’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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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멜버른에서 취재진과 만난 마틴 퍼거슨 CO2CRC 회장은 "호주는 상업적으로 운영 가능한 잠재 이산화탄소 저장소인 해상 고갈 유가스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호주로 수입해 저장할 수 있는 법안이 호주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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