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한 미 은행 수십곳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증시에서 은행주는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피치의 크리스 울프 애널리스트는 15일(현지시간) 오전 공개된 CNBC 인터뷰에서 미 은행업계의 영업환경(Operating Environment, OE) 등급이 악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은행업계의 OE등급을 현 'AA-'에서 'A+'로 한단계 낮추게 되면 모든 재무 기준을 재조정하게 된다"며 "부정적 등급 조치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70개 이상의 미 은행에 대한 전면적 등급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산 기준 미 최대 은행인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현재 AA- 등급인 은행들의 경우 개별 은행의 등급이 업계 OE 등급을 웃돌지 못하는 만큼 자동 강등되게 된다. 이에 따라 다른 미국 은행 역시 연쇄적 하향이 불가피하다. 이는 한 단계만 떨어져도 투자 부적격에 가까워지는 낮은 등급의 일부 은행들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울프 애널리스트는 이날 인터뷰에서 OE 조정이 이뤄질 구체적인 시기, 낮은 등급의 은행들에 미칠 여파 등에 대해서는 추측하고 싶지 않다고 발언을 꺼렸다. 다만 그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기준 모두에 기반에 몇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서 "절대적 기준으로는 이미 많이 떨어져 있는 일부 BBB- 등급 은행들은 해당 등급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연초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지역은행 연쇄 붕괴 등으로 인해 이미 은행권 시스템을 둘러싼 우려는 높아진 상태다. 앞서 피치는 지난 6월에도 은행들의 OE 등급을 'AA'에서 'AA-'로 내렸다. 다만 당시에는 신용등급 강등이 수반되지 않아 시장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보고서를 작성했던 울프 애널리스트는 "등급 강등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실제적 위험이 있음을 시장에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고 짚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지난주 지역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을 하향하면서 향후 대형은행을 포함한 은행 17곳에 대한 추가 강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피치의 강등 경고가 나오는 배경과 관련해 가장 큰 요인으로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경로가 꼽힌다. CNBC는 시장에서 이미 Fed의 금리 인상 행보가 마무리 수순이고 내년 인하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이는 기정사실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예상보다 오랜 기간 고금리가 이어질 경우 은행업계의 이익마진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울프 애널리스트는 "우리는 Fed가 어디서 멈출지 모른다"면서 "이는 은행시스템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보(input)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긴축 사이클에서 은행권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현재 피치는 고금리 환경에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 리스크가 소규모 은행에 미치는 여파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고금리, 원격근무로 사무실 수요가 감소하면서 최근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중소형 은행의 약한 고리로 꼽히고 있다.
광범위한 신용 강등의 여파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신용등급이 강등된 은행들이 채권 발행 시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마진이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울프 애널리스트는 "반드시 (등급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내려가게 되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별도로 피치는 이달 초 미 연방정부 재정적자 한도 증액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 갈등, 재정 악화, 국가채무 부담 등을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기도 했다. 당시 JP모건체이스 회장인 제이미 다이먼 등 금융계 리더와 이코노미스트들은 "말도 안 된다(ridiculous)"며 피치의 결정을 비판했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은행 관련주는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JP모건은 전장 대비 2.55% 내린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BoA 역시 2.47% 떨어졌다. 시티, 웰스파고,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도 1~2%대 낙폭을 기록 중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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