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힘>펴낸 정기영 서울대병원 교수
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버려야
잠 못자는 한국, 미국은 전염병처럼 대응
수면은 치매에도 영향…7시간은 자야
"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면 습관이나 상태를 올바로 마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기영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25년간 수면의학자로 다양한 환자를 만난 결과를 이 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올해 세계적 권위의 미국수면학회 펠로로 선정됐고 대한수면연구학회장도 맡고 있다. 정 교수는 잠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잠의 힘>을 펴냈다. 그는 "삶에서 잠은 중요한 시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잠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서 "잠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사회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종 통계에서도 한국인은 잠이 부족하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51분으로, OECD 회원국 평균(8시간 22분)보다 31분이 부족, 최하위를 기록했다. 올해 세계의 수면의 날(3월17일)을 맞아 글로벌 수면솔루션 브랜드 '레즈메드'가 12개국 2만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9시간으로 12개국 평균 수면시간인 7.16시간보다 낮았다. 수면의 양과 질에 대한 만족도는 ‘불만족스럽다"라는 답변이 각각 50%, 55%로 집계됐다. 12개국의 수면의 양과 질에 대한 불만족이 각각 35%, 37%인 것과 비교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의 표현처럼 ’수면 빚‘, ’수면부채‘를 안고 산다. 이 빚은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갚아나가야할 과제다.
정 교수는 "미국이 수면 문제를 전염병이나 공해와 같은 공공보건의 문제라고 선언했듯이 수면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문제"라며 "한국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결과만 봐도 한국인들의 수면의 질은 최저"라고 짚었다. 사람들은 수면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잠 몇시간 줄이는 건 건강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스스로 판단해서다. 하지만 잠은 하루만 못 자도 몸과 마음에 많은 영향을 준다. 정 교수는 "단기적으론 스트레스 반응이 증가하고 혈압과 혈당이 증가한다"면서 "정서적으로는 쉽게 짜증을 내고 불안이나 우울감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비만, 대사증후군,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뇌졸중의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수면이 부족하면 치매에 영향을 미친다. 정 교수는 "수면은 뇌에 쌓인 독성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를 배출해 이른바 ‘뇌의 청소부’라고도 불린다"면서 "수면 장애가 있으면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배설이 감소하면서 뇌 내 축적이 증가해 치매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에서 수면 시간과 치매 발생의 관계를 연구했는데, 50~60대에 6시간보다 적게 잠을 잔 사람들은 7시간 잔 사람에 비해 치매가 20~30%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5시간 잔 사람이 7시간 잔 사람보다 심혈관계 질환에 2배 더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건강에 좋은 최적의 수면 시간은 청소년 8~9시간, 성인 7~8시간이다. 그렇다면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있을까. 우선 침대에서 스마트기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스마트 기기에서 나오는 LED 조명은 480㎚ 근처의 푸른색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 이 푸른색 파장이 활동의 주기를 조절하는 호르몬 ‘멜라토닌’의 분비를 억제한다. 눈의 망막에서 시신경 교차상핵으로 보내는 광민감망막신경절세포가 480㎚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멜라토닌은 우리 몸에서 활성산소를 제거해 호흡에 사용되는 산소의 독성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정 교수는 "폭풍 성장기인 초등학생이 자기 전 스마트기기를 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자기 2시간 전에는 스마트기기를 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칙적인 생활도 중요하다.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해야 한다. 주중에 잠을 못 잔다고 주말에 몰아서 자면 신체리듬이 불균형해진다. 주말에도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게 좋다. 온도도 관련이 깊다. 장 교수는 "손발은 따뜻하게 하고 침실은 약간 서늘하게 하는 게 좋다"면서 "심부체온이 내려가지 않으면 수면 압력이 높아도 수면모드로 전환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권장하는 침실 온도는 16~18도이며, 아침에는 심부체온이 최저점을 지나 상승하면서 기상을 준비하므로 침대나 침실 온도가 자기 전에 비해 따뜻해야 잠에서 깨기가 수월하다"고 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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