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화엄경>이 이처럼 부처님에 대한 보살들의 설명이라면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와 무슨 상관일까요? <금강경>은 지금, 여기의 '나'의 참모습이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알려 주기에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를지언정 일단 '나'에 대한 이야기인 줄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엄경>은 일단 겉보기에 '나'가 아니라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나'와는 별 관계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화엄경>은 '나'의 참모습을 무아·연기로 여실하게 봄으로써 모든 고통을 여읜다는 불교의 목표와 방법과 내용에 어긋나고 '나'의 탐구와 '나의 이익'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한 마디로 불교가 아닌 것은 아닐까요?
여기서 <화엄경>이 '나'를 바라보는 아주 독특한 입장과 그로 인한 <화엄경>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참모습을 여실히 알아 모든 고통을 여읜 부처님은 지금, 여기의 '나',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이 <화엄경>이 바라보는 '나'이자 '부처님'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하루하루 고통을 다른 고통으로 밀어내며 살아가는 '나'가 바로 부처님이라니요? 그런데 <화엄경>은 그렇다고 합니다. 왜, 어떻게 '나'가 부처님인지,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부처님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 바로 <화엄경> 전체에서 설해지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의 설처럼 '나'가 '부처님'이라면, 부처님에 대해서 설하는 <화엄경>은 바로 다름 아닌 '나'의 참모습에 대해서 설하고 있는 것이지요. '나'의 참모습은 부처님이므로, 부처님인 '나'에게 고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화엄경>은 조금도 모자람 없이, 다만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불교의 내용과 방법과 목표를 재해석하여 <화엄경>이 생각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래 뜻을 드러냄으로써 이고득락의 목표를 성취하고자 합니다.
-박보람, <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불광출판사, 1만6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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