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당초 내년 예정됐던 미국 애리조나주 생산공장의 가동 시기가 2025년으로 늦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우려대로 현지 숙련 인력난이라는 복병을 만난 탓이다. TSMC는 2분기 부진한 실적을 공개한 데 이어, 올해 연간 매출도 1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TSMC의 마크 리우 회장은 이날 2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숙련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의 반도체 생산이 2025년으로 연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TSMC가 미국에서 직면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갖춘 숙련 인력이 부족하다"면서 "대만에서 미국으로 기술 인력을 파견해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TSMC는 미국 애리조나 생산시설에 400억달러를 투입해, 2024년부터 1기 공정시설에서 4나노미터 칩의 대량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이후 2026년부터 2기 공정시설에서 3나노미터 반도체 칩을 생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장 건설 과정에서 최첨단 맞춤형 장비를 다루는 숙련 인력 부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2024년 내 양산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했었다.
이날 리우 회장은 TSMC가 조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현지 반도체 시설과 관련한 최종 보조금 및 세액공제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TSMC가 애리조나에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대만과 비교해 최소 50% 이상으로 전해진 만큼, 미국 정부의 보조금이 필수적이다. 그간 리우 회장 역시 이러한 입장을 수차례 미 정부에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목표로 한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노력의 중심에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 손꼽힌다. 작년 12월 열린 장비 반입식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WSJ는 "미국은 중국과 관계가 악화한 가운데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시도해왔다"고 전했다.
애리조나 공장 가동이 연기되면서 이 공장에서 생산된 '메이드 인 USA' 반도체를 사용하기로 한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애플이 TSMC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최신 칩 대부분은 대만 현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ASML의 피터 웬닌크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통신에 "필요한 기술과 숙련된 작업자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정치인들이 새로운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개된 TSMC의 2분기 실적은 뒷걸음질쳤다. 2분기 매출은 4808억4100만대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다. 순이익은 23.3% 줄어든 1818억대만달러에 그쳤다. TSMC의 매출과 순이익이 감소한 것은 글로벌 반도체 침체기였던 2019년1분기 이후 약 4년만에 처음이다. 이러한 부진한 실적 배경으로는 거시경제 여건 악화에 따른 소비자 수요 둔화, 비용 상승, 중국의 더딘 경제회복 등이 손꼽힌다.
이와 함께 TSMC는 올해 연간 매출도 전년 대비 1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3개월 전 제시한 한자릿수 감소 전망보다 더 나빠진 수준이다. TSMC의 CEO인 웨이저자는 "모든 것이 거시경제에 관한 것"이라며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는 전 세계 모든 지역의 모든 시장 부문에서 수요에 여파를 미치고 있다. 중국의 경제 회복도 우리 예상보다 더디다"고 진단했다. 다만 향후 인공지능(AI) 관련 수요가 확대되면서 이러한 여파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TSMC의 부진한 실적 전망에 이날 뉴욕증시에서 반도체 관련주는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AI 랠리 수혜주로 손꼽히는 엔비디아는 전장 대비 4%가까운 낙폭을 나타내고 있다. AMD는 6%가까이 내려앉았다. 인텔, 퀄컴의 하락폭도 3%를 웃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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