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스마트폰 정복 후 PC 시장으로 돌격
반도체 우위와 OS 업그레이드 쌍끌이 전략 가동
인텔 CPU 제거 이어 맥OS 따라하던 MS 정조준
원조 PC 제조사 자존심 확보 나서
애플 쇼크웨이브는 맥 컴퓨터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고 전한 바 있다. 코로나19가 유발한 대규모 IT 구매 수요가 빙하기로 접어든 상황에서도 애플은 자체 설계한 반도체의 성가에 힘입어 가속 기어를 끌어 올리고 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다룬다. 그러나 애플이 진정한 하드웨어 통제권을 가진 역사는 깊지 않다. 1976년 잡스의 집 창고에서 시작된 애플 역사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반도체를 자체 확보한 게 불과 10여년이 조금 넘는다.
애플은 스마트폰 사업을 시작하며 큰 변화를 선택했다. 컴퓨터와의 결별이었다. PC 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말이 아니다. 사명에서 컴퓨터를 삭제한 것이다.
아이폰, 아이패드로 애플에 입문한 사용자라면 생소한 대목이다. 애플이 컴퓨터 회사였다고? 그렇다. 애플은 애초에 컴퓨터 회사다. 지난 1977년 세계 최초의 일체형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게 애플이다. PC의 '시조새'가 애플이다.
애플이 사명에서 컴퓨터라는 족쇄를 걷어낸 것이 2007년이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 아이폰을 공개한 후 사명을 애플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파격이었다. 목적은 확연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소비자 가전 회사로 전환이다. 잡스는 MP3플레이어 '아이팟'으로 컴퓨터로도 못 이룬 시장 장악 성과를 맛본 후 전격적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만약 애플이 컴퓨터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었다면 MP3플레이어 사업에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만큼 절박했다. PC 시대를 연 장본인인 잡스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PC는 애플과 IBM에 의해 세상에 등장했다. 애플과 IBM은 각자의 방식으로 PC를 선보였고 지금에 이른다. IBM은 반도체 부품과 소프트웨어 공급처인 인텔(Intel)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 PC 시장을 넘기며 퇴장했다. PC의 진검승부는 애플과 MS-인텔로 구성된 '윈·텔' 연합군 간의 대결로 변화했다.
잡스와 애플은 최고의 OS와 디자인의 심미성을 앞세웠지만, MS는 애플의 OS를 지속해서 추격했다. 애플이 선보인 기능을 MS가 뒤늦게 선보이는 형국이었다. 맥 컴퓨터가 선보인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는 MS의 윈도가 잠식했다. 인텔의 CPU는 애플의 협력사인 모토로라를 껑충 뛰어넘으며 사실상 독주체제를 갖췄다.
애플이 사명에서 컴퓨터를 떼는 선택을 한 것은 배수진을 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팟으로 성공을 맛봤지만, MS와 인텔을 추격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렇게 애플이 처음 아이폰을 내놓고 사명을 변경한 지 10년 후인 2017년. 아이폰 10주년 기념 제품인 아이폰X를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진다. 애플이 자체 개발한 아이폰용 칩 'A'시리즈의 성능이 급격히 향상되기 시작하면서다. 안드로이드 진영 스마트폰의 핵심 반도체 성능은 애플과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2020년 선보인 PC용 'M' 시리즈는 더 큰 충격을 남겼다. PC 업체들의 숙원이었던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적은 양의 전기를 소비하는 컴퓨터, 열을 적게 발산하면서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원한 잡스의 희망은 현실이 됐다.
통상 애플 실리콘으로 불리는 M 시리즈 칩이 등장한 지난 3년간 변화는 수치에서 드러난다. 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 조사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 PC 시장에서 맥OS의 점유율은 21.38%다. 미국 내만 집계하면 31%에 이른다.
10년 전 미국 내 맥OS의 점유율이 12.86%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변화다. 컴퓨터 전문 매체 컴퓨터월드는 맥 컴퓨터 상승세는 애플 실리콘 등장 이후 더욱 본격화됐다고 파악했다.
시장 규모도 맥은 60% 늘어났지만, 윈도 PC 시장은 6% 증가에 그쳤다. PC 시장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스마트폰에 멈출 수 없다, PC 시장도 뺏는다
애플은 PC 시장 정복을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과거보다 저렴한 PC, 과감한 반도체 투자, 신속한 운영체제(OS) 지원을 무기로 윈도 PC 진영을 공습 중이다.
애플은 M1, M2에 이어 M3 칩을 준비하고 있다. 애플은 2020년 M1을 선보인 후 지난해 M2를 내놓았다. 이어서 1년 만에 M3라는 폭격기가 대기 중이다.
M2 칩은 얼마 전 최고 성능의 M2 울트라로 라인업이 마무리됐다. 지금도 인텔, AMD의 CPU에 비해 충분한 성능 우위를 보인다. 그런데도 애플은 M3를 당초 예상보다 빠른 올해 연말쯤 선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애플은 M3 제조를 위해 TSMC의 3나노 공정을 독점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 미세화가 이뤄진 만큼 성능 향상도 급격할 것이 유력하다. M2는 공정 변화가 크지 않아 잠시 주춤했던 질주에 속도를 더할 준비가 된 셈이다.
인텔과 AMD는 3나노 공정 CPU를 확보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인텔은 자체적으로 1.8나노 공정까지 예고했지만, 실제 생산이 목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AMD는 애플에 밀려 TSMC의 3나노 공정 확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애플 실리콘의 성능을 앞서가고 있는데 추격 경로에는 벽이 생긴 셈이다. PC 매체 컴퓨터 월드는 "애플이 달궈진 쇠를 담금질하고 있다(Apple is striking while the iron is hot)"고 표현했다.
이제 PC 시장의 레이스는 100m 달리기 경주에서 마라톤으로 변화하고 있다. 단기 승부가 아니라 장기 승부가 무르익고 있다.
애플, 반도체와 OS 쌍끌이 전략 가동
애플은 OS에 진심이었다. 현재 맥컴퓨터 OS는 잡스가 설립했던 넥스트(Next)에서 시작됐다.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한 이후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현재의 맥OS로 발전시켜왔다.
M이 인텔의 '킬러'였다면 MS를 겨냥한 무기는 맥OS다. MS가 윈도 11을 내놓은 게 2021년 10월이다. 윈도10은 2015년에 등장했다. 6년 만에 판이 바뀌었다. 이런 속도는 애플에 크게 뒤진다.
애플은 해마다 OS의 판을 끌어올리고 있다. 매해 새로운 이름의 OS를 공개하면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지난해에 선보인 벤추라 OS도 올해 소노마로 변경될 예정이다.
소노마라는 이름도 특이하다. 과거 인텔이 내놓았던 노트북용 듀얼코어 CPU와 와이파이용 반도체 세트에도 '소노마'라는 별칭이 붙었다. 애플과 인텔은 맥OS와 CPU에 지역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같은 이름이 붙은 경우는 드물다.
애플은 인텔 CPU를 사용한 PC에 대해서는 OS 지원을 서둘러 끝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애플은 업계에서 소비자에 대한 OS 지원을 길게 가져왔다. 지속해서 OS가 개선되는 아이폰이 그렇지 않은 안드로이드폰에 비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맥OS의 지원 기간이 2015년 이후 줄어들고 있다. 약 6년 정도로 서비스 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중요한 변곡점이다.
인텔 CPU를 사용한 '인텔맥' 컴퓨터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인텔에서 애플 실리콘으로의 전환을 끝냈지만 진정한 마무리는 OS 지원 중단이다. 가장 먼저 애플 실리콘을 사용한 맥북 에어의 경우에는 2020년 초반까지 생산된 인텔 CPU 버전이 2026년경이면 OS 업데이트가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인텔 CPU를 사용한 맥 컴퓨터의 OS 업그레이드가 중단된다면 소비자들은 새로운 PC를 구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OS 지원이 끊겼다고 PC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안 문제가 불거져도 제조사 차원에서 지원이 없는 PC가 소비자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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