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여러 종교와 사상 가운데 자아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불교가 유일합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사상도 자아에 대한 관념을 버리라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서양의 모든 철학은 자아라는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지요. 죽음 이후에 동일한 영혼을 지니고 다시 태어나는 주인공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자아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은 현재에도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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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자아에 대한 관념을 인간의 고통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으로 진단합니다. 나도 모르는 시절부터 내가 보고 내가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으니, 이 고통의 사슬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자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불교는 '나'가 있다는 생각부터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자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보던 시각을 완전히 뒤집고 있네요. 그러니 불교가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뿌리째 흔들기 때문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보살은 보살이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금강경>의 설법이었습니다. 자아의 관념을 깨트리는 일은 대승불교의 보살들에게도 가장 올바른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핵심 중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른바 보살은 '나는 보살', '너는 중생'이라는 관념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내가 제도하였다'라는 관념을 일으켜서도 안 됩니다. 보살이라 할 만한 법은 실제로 없습니다. 자아도 없고, 개아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말합니다. '나'라는 관념을 깨트리라는 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하나의 말에 <금강경>의 모든 설법이 담겨 있습니다. '나'라는 오래된 생각의 감옥을 부수고, '나' 없음의 이치를 깨달아야 진정한 보살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성옥, <인문학 독자를 위한 금강경>, 불광출판사, 1만6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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