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국내 전문가 24명 설문조사
최근 美긴축에도 내년 초 금리인하 전망
연말 물가둔화 확인시 경기 신경쓸 수밖에
최대 변수는 '부동산'…금리 상하방 요인
국내 전문가 중 상당수는 내년 1분기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연내 2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긴 했지만, 연말 전후로 물가 안정 흐름이 더 확인되면 과도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양국 모두 내년 초 금리인하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앞으로 국내 통화정책의 최대 변수로는 '부동산 경기'가 가장 많이 꼽혔다. 부동산 경기 둔화로 역전세 문제와 새마을금고 부실 우려가 심화하면 경제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금리인하가 빨라질 수 있으나, 다시 집값이 상승 반전하고 가계대출이 대폭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면 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전문가들 "내년 1분기 한미, 금리인하 시작"
아시아경제가 지난 4~7일 국내외 증권사 애널리스트, 경제연구소 연구원 등 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묻는 질문에 '내년 1분기'를 선택한 전문가가 한국은 10명, 미국은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과 미국 모두 내년 1분기 금리인하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21~22년부터 시작된 물가 안정을 위한 통화긴축 효과를 확인하면 그에 따른 경기 부진 폭 조절의 필요성이 연말에서 내년 초로 갈수록 부각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 모두 현재 고강도 긴축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물가 안정 분위기가 더 짙어지면 긴축 강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데, 그 시점이 내년 1분기가 유력하다는 설명이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연말이 돼 2%대로 물가상승률이 충분히 수렴한다는 증거가 있으면 금리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금리인하 시점 전망으로 올해 4분기와 내년 2분기가 각각 7명으로 동일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2.7%까지 떨어지는 등 미국에 비해 뚜렷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금리인하가 연내로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미국의 금리인하 기조를 먼저 확인한 뒤 내년 2분기는 돼서야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팽팽했다.
윤석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연말로 갈수록 경기 둔화 조짐이 본격화되면서 Fed의 금리인하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내의 경우 하반기 반도체 업황 개선에 따른 수출 회복세 등에 힘입어 단기간 내 경기 하방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임에 따라, 미국의 금리인하를 확인한 이후 내년 2분기 금리인하를 통해 긴축 수준을 완만히 정상화해나갈 전망"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 전망은 내년 1분기 다음으로 내년 2분기(7명)가 뚜렷하게 많았다. 한국과 달리 올해 4분기를 전망한 전문가는 3명에 불과했다. 이는 최근 미국의 여전히 강한 고용시장과 Fed의 잇따른 긴축 선호 발언 영향으로 보인다.
파월 Fed 의장은 지난달 말 포르투갈에서 열린 연례 중앙은행 총재 모임에서 아직 금리가 충분히 높지 않다면서 "회의 때마다 연속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는 물론, 9월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 미국의 긴축 기조가 상당 기간 더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키웠다.
'물가→부동산'…바뀐 통화정책 최대 변수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최대 변수(복수선택)로는 '부동산 경기'를 선택한 전문가가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아시아경제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같은 질문에 총 20명의 응답자 중 가장 많은 13명이 '소비자물가'를 꼽았고, '부동산 및 금융안정'을 꼽은 전문가는 1명에 불과했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 두 달 사이 물가상승률에 대한 우려는 많이 약해진 대신, 부동산과 관련된 역전세, 금융권 불안, 가계대출 확대 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7월 2%대 둔화 흐름을 보이다가 연말까지 3% 안팎에서 등락할 것'이란 한은 전망대로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문제의 경우 기준금리 상하방 요인으로 모두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앞으로 부동산 침체·회복 방향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쉽지 않고, 그 파급효과도 불분명하다는 취지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은 KB부동산 주간 조사 기준으로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전세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잔존 전세계약 중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지난해 1월 25.9%(51만7000가구)에서 지난 4월 52.4%(102만6000가구)로 크게 늘었다.
특히 최근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논란까지 일으킨 새마을금고의 올해 1월 말 기준 건설업·부동산업 관련 기업 대출 잔액은 56조4000억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말에 비해선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 우려가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지방 미분양은 심각한 상황이라 부동산발 금융권 불안에 마음을 놓긴 이르다.
윤석진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가계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높다"며 "긴축 기조가 장기화할수록 역전세 등 주택시장 위험과 부동산 PF 리스크의 부담이 가중되므로 향후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도 "향후 부동산 PF 문제가 더 커지면서 금융 불안으로 불거질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발 전세·금융 불안을 막기 위해 한은이 통화정책 완화 기조로 빨리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포디움에서 '2023년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원본보기 아이콘집값 반등해 가계대출 늘면…긴축 길어질 가능성
이와 반대로 최근 서울 아파트값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한은이 상당 기간 완화 기조로 돌아서기 힘들 것이란 의견도 많다.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경기가 개선되고 가계대출 금액이 다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 한은이 한차례 정도 추가 인상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균 이코노미스트는 "추가 가계부채 증가를 확인하면 한은의 긴축 기조는 내년 1분기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다만 PF 금융 등 부동산 시장 자금조달 압박 지속과 금융시스템 불안 고려 시 추가 인상 단행은 인하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이외에 국내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주는 미국의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9명)와 원·달러 환율 추이(7명), 경제성장률(5명)이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의견도 많았다.
임제혁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현재까지 25~54세(prime age)를 중심으로 노동 공급이 원활하게 확대되며 고용의 타이트함이 완화되고 있으나 안정화 추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추가 긴축 충격 시 원·달러 환율 불확실성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또한 긴축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의 대외 금리차 확대 등 글로벌 통화정책 디커플링의 국면에서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높아진다면 물가 상방 압력도 증가할 수 있다"며 "현재 경기가 둔화하고는 있으나 그 속도가 빠르진 않다"고 말했다. 최근 1300원 안팎에서 움직이는 원·달러 환율이 다시 급등하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금리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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